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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없는 프린세스 스마일

STAR LIFE STORY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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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순 없지만, 시간을 초월할 수는 있습니다. 클래식의 힘이죠. 오드리 헵번은 그 자체로 ‘클래식’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낡기는커녕 점점 새로워집니다. 끊임없이 오드리 헵번의 고전 영화가 ‘기획전’ 형식으로 스크린 위에서 살아나는 이유이기도 하죠. 숏컷과 아이스크림, 담뱃대와 진주목걸이, 통기타와 문리버, 집채만한 모자와 드레스.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는 헵번은 이런 이미지 조각을 넘어, 여성 서사의 새로운 도전으로서 클래식이 된 그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편집자 주


환상적인 여인상
가식없는 프린세스 스마일

1950년 초반부터 1970년 말까지 약 15년 동안 톱 스타의 자리를 지킨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  세월은 흘러 그녀도 이제 쉰 다섯(한국나이) 이 되었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전쟁과 평화〉, 〈하오의 연정〉. 〈소문난 사이, The Childern’s Hour〉,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주옥같은 명편들을 통해 「신비에 싸인 여인상」으로 기억 되는그녀―. 

「현실 속에 살면서도 현실 속엔 없고, 성 처녀처럼 정결하여 외경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여성. 가련한 듯 하면서도범하기 어려운 개성과, 가식이 없는 프린세스 스마일···」

성처녀 같은 정결

생각해 보면 그녀의 최대의 특징은 육감을 자극하는 섹스 어필이 그녀에겐 전혀없다는 점이다. 54년 〈사브리나〉가 상영되어 크게 히트하자 와일더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젓가슴이 볼록한 아가씨들이 화면에서 사라질거야. 무턱대고 유방이 크고 노출을 많이 시켜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던 시대는 끝났어…”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해서 먹으면 물린다」는 속담처럼 팬들이 섹스 자체에 영증을 느꼈을 때, 그녀는 섹스 심볼만이 여성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섹스 이외의 또다른 매력을 그녀가보여준 셈이다. 그리하여 이성을 동경하면서도 노골적인 성적 충동에 미묘한 반감을 나타내는 젊은 여성들과, 이성을 그리워 하면서도 프리 섹스에 윤리적인 수치감을 느끼는 팬들의 절대적인 우상으로 오드리가 부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을 제외한 여성적인 매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손과 발의 전아한 움직임, 알맞게 아름다운 허리와 앞가슴, 지성미를 풍기는 교양 있는 말씨, 즉 「우아」한 것을 여성의 매력 포인트로 알았다. 소위 이 「이상의 여인상」이 오드리에게 있다고 믿은 것이다.

대뷰작 〈로마의 휴일〉은 오스카 안고
숏 컷, 아리안느 스카프 유행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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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아름다움

오드리 헵번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탄생했다. 부친은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부호, 모친은 네덜란드의 귀족. 네살 때 런던으로 건너가 학교교육을 받으며 발레를 배웠다. 51년까지 6편의 영국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중 윌리암 와일러 감독에게 발탁되어 〈로마의 휴일〉 에 데뷰했다. 억세게 운이 좋은 그녀는 53년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을 받는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

 프린세스 안(오드리 헵번)은 친선 여행 중 로마에서 키다리 신문기자(그레고리 펙)를 만나 청순한 사랑을 하여 인간다운 삶을 맛본다음 다시 프린세스의 세계로 돌아간다. 길게 딴 머리를 자르고, 기타로 사내의 머리를 후려치며, 난생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본다. 스페인 계단을 내려오면서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럼 맛에 취하기도 하는데 프린세스로서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한 첫 경험이다. 

 팬들은 이처럼 밝고 발랄한 개성을 전에는 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환상속의 여인」과 처음으로 만난 셈이다. 외국태생의 험리우드 스타 가운데 대스타로 성장한 사람은 1930년대의 그레타 가르보, 1940년 대의 잉그리드 버그만, 그리고 50년대의 오드리 헵번 정도다.  오드리가 〈로마의 휴일〉로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환상속의 여인상」을 보여주었다는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시대적인 상황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의 헐리우드는 TV수상기가 급진적으로 보급되는 바람에 흥행 수입이 격감, 경영면에서 매우 불안정했다. TV에 대항할 수 있는 대형스크린의 탄생이 절실해졌고 월급장이였던 감독, 각본가, 전속배우들이 무자비하게 방출되어 소위 「독립 프로듀서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들 「프로듀서」들은 제작사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는데 이 돈은 해외에 동결되어 있는 소위 「동결달러」였다.  「동결달러」란 전후 미국의 해외정책 (마샬 플랜) 에 의한 산물로, 미국인들이 유럽일대에서 번 돈은 현지에서 사용해야 하며, 국내로 들여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동결달러」를 써서 제작된 영화를 「런 어웨이」 방식 또는 「런 어웨이 영화」라고 헐리우드 사람들은 불렀다. 〈로마의 휴일〉이 바로 이 케이스. 파라마운트의 「동결달러」로 만들어진 첫 작품이다.

 〈로마의 휴일〉 의 줄거리는 영국 왕실을 취재한 것. 젊은 왕녀들의 로맨스가 세계적인 화제로 등장하자 이에 편승해서 만들어졌다. 1952년 2월 영국의 죠지 6 세가 사망하자 엘리자베스 2 세가 왕위를 계승, 다음해 6월에 대관식을 가질 예정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가렛트 왕녀와 타운센트 대령과의 충격적인 비련(悲戀) 사건이 터져 연일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었다. 〈로마의 휴일〉의 프린세스 안은 분명 마가렛트 왕녀를 연상한 영화. 숙명적으로 고독한 존재.

 또한 당시의 헐리우드는 미국 전체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맥카시 선풍과 전쟁무드에서 도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로마의 휴일〉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정치적으로 리버럴파이었고 그 때문에 로마에서 촬영하는 동안 읻ㄹ은 화기애애한 해방된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 〈로마의 휴일〉이 제26회 아카데미 후보로 11개부문이나 노미네잍 되어 3개부문을 수상한 이면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도 가세했으리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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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하오의 연정〉
씬 유리알같이 투명한 만년처녀

수줍어 한다거나 조심스러워 하는 따위의 소위 소녀티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없어지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오드리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실상 그녀는 삼십세가 넘어서도 소녀티가 조금도 가시지 않은 불가사의한 특질을 보였다. 이점이 그녀의 신비이자 매력이다. 더더욱 불가사의한 것이 그녀의 품성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61〉에서 오드리는 뉴욕 아파트 촌의 고급 창부역을 말았다. 별로 하는 일없이 남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살아나가는 보리. 그 옛날 촌에서 나이 차이가 너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한 과거가 있는 여인이다. 오드리는 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여자역을 마치 프린세스에 가까운 연기로서 승화시켰다. 찬란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간밤에 입었던 잠옷을 그대로 입고 종이 컵에 커피를 따라마시는 그 의연한 기품. 바로 이것이 오드리의 매력이다.

 오드리는 〈로마의 휴일〉 이후 20여 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처럼 그녀의 개성이 강렬하게 표출된 작품은 없다. 창부라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인데도, 오드리가 분장한 보리는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고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스한 분위기로 어두운 이미지를 쌓아 감추었다. 뿐만 아니라 창부들에게 있어야 할 성적인 제스처도 하지 않고 맑고 싱그러운 요정으로 시종했다.  범하기 어려운, 그냥 두고 감상만 했으면 좋을 새로운 상이 창출된 것이다.

사회심리가 작용

〈소문난 사이,The Children’s Hour, 61〉는 오드리의 전작품을 동해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여자」임을 보여준 작품이다. 공동으로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사이좋은 두 여성 (오드리와 설리 맥클레인). 이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마타도아 작전으로 동성연애를 하는 사이처럼 소문났다. 나중에 이 오명이 씻기지만 카렌(오드리)을 잠재의식에서 사랑한 마사(셜리)는 죄의식에 짓눌려 고뇌하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만다. 아주 애절한 이야기.

 모든면에 깔끔하고 성실한 성격의 카렌역을 만약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아무리 유명한 명우라 하더라도 차갑고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일면이 나타났을 텐데, 오드리는 아주 부드럽고 친근감이 가는 여자다운 여자로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독특한 매력. 길다란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깡마른 몸에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그 녀. 그녀는 한없이 괴로워 해야 하고 슬퍼해야 할 처지인데 이 시련을 「여자다움」으로 극복한다. 사람들은 이 카렌에게서 진실한 여인상을 찾은 것이다. 

 한국의 올드 팬(?)들에게 감미로운 회상으로 떠오르는 〈하오의 연정〉에서 상대(게리 쿠퍼)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오드리는 연민의 정을 자아내는 사랑의 호소를 한다. 남편이 있는 스물여덟 난 몸인데도 슈바리에란 중년신사의 인품에 매료되어 사랑에 목말라 하지만 이 중년의 눈엔 스물여덟 난 여인이 어린애로만 보인다.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잊혀지지 않는 씬. 악사들이 바이올린을 켜는데 탕 속의 주인공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미로운  「매흑의 왈츠」에 매혹되어 춤을 계속한다. 목욕탕의 김이 바이올린에 서려 악사는 여러번 물을 쏟은 다음 연주를 계속한다. 그 사랑을 갈구하는 가련한 모습. 오드리는 이 영화에서 독특한 모양으로 스카프를 매는데, 나중에 「호소한다」 는 뜻을 표시하는 간접표현으로 이 「아리안느 스카프」가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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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페어 레이디〉 개런티는 100만달러
“영화때문에 가정 떠나고 싶지 않다” 

파라와 첫결혼

오드리 헵번처럽 하루 아침에 유명 해진 배우도 드물다.데뷰작이 〈로마의 휴일〉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했지만 그녀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오스카를 가슴에 안는다. 다음해인 1954년 미남배우 멜 파라와 전격적으로 결혼, 55년엔 남편과 함께 대작 〈전쟁과 평화〉에 공연한다. 오드리는 파격적으로 35만 달러의 캘런티를 받았다.

 58년 사회파 영화인 〈The Nun’s Story〉에 출연 세번째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60년 〈The Unforgiven〉을 촬영중에 낙마, 중상을 입고 1개월 동안 입원했었다. 낙마 쇼크로 그녀는 첫 아이를 유산하고 실의에 찬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The Nun’s Story〉로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주연여우상을 받게 되자 그녀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명성이 병과 상심을 씻어준 것이다.

  60년에 기다리던 장남 숀 출생. 3개월 동안 휴양을 취한 다음 뉴욕으로 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촬영. 이 시기부터 오드리의 이미지는 확고부동하게 뿌리 박혔다.

 63년 1백만 달러의 캐런티로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에 주연, 제작진들이 촬영을 서둘렀으나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당시의 여론은 이 영화로 오드리가 오스카를 안을 것이라고 했으나 보기좋게 낙방, 아이러닉 하게도 오스카 시상식을 그녀가 맡아 했는데 그때 그녀의 「인상적인 웃음」이 오늘에도 전해지고 있다.

 65년 다시 와일더 감독과 손을 잡고 그와의 세번째 작품 〈How to Steal a Million〉에 출연. 67년 본격적인 미 스테리 영화 〈Wait Until Dark〉에 주연, 촬영이 끌나자 마자 멜 파라와의 별거를 ㄴ선언. 그러나 〈Wait Until Dark〉는 공전의 히트를 거두어 오드리는 또다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68년 1월 멜 파라와 정식 이혼. 꼭 1년후인 69년 1월 로마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재혼했는데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또한 축복을 받았다.

 70년 2월 루카 출산. 그후 2~3년 동안 그녀에게 수많은 출연교섭이 있었으나 「결코 영화때문에 로마를 뜨지 않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두번째 남편과의 가정을 지켰다. 

 오드리의 로마에서의 칩거생활은 만 5년. 드디어 75년 리챠드 레스타 감독의 〈로빈과 마리아〉에 숀 코넬리와 공연했는데 그녀의 스크린 컴백은 실로 7년 만이다. 

 79년 테렌스 영 감독의 올스타 영화 〈화려한 상속인〉서 열연. 81년에 두번째 남편과 이혼. 82년 피터 보그다 노비치 감독의 〈그들은 모두 웃었다〉에서 벤 갸사라와 깨가 쏟아지는 사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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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슨 결혼을 하겠어요” 
하루 켄트 2갑 태우는 애연가

83년 3월에는 〈로마의 휴일〉 이후 그녀의 의상을 담당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지방시 콜렉션에 특별 초청되어 일본을 방문한 바 있다. 

 작년 3월 27일 일본에 온 오드리 헵번은 영화평론가 기요도(淸藤秀人)와 짤막한 인터뷰를 했다.

당신이 출연한 작품 가운데 특별히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은? 

“특별히 애정을 느끼거나 신경이 쓰이는 작품은 없다. 모든 작품이 나로서는 소중하고 꼭 내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신작 예정은?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지금 처지로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약혼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결혼할 생각인가? 

“그와는 대단히 가깝다. 또 가까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 

오드리에겐 좀 무리한 질문이었는데도 시종 웃는 얼굴로 성의있게 대답 했다고 기요도는 썼다.

 「그녀는 퍽 보수적인 옷차림을 했다. 화려한 영화생활로 미루어 보면 옷이나 몸치장이 요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전혀 그런 면이 없다. 그녀는 ‘단순한게 좋다’ 고 말하면서 남색 원피스와 블루의 셔츠만을 입었다. 악세사리도 반지 2개. 그것도 요란스러운 다이아 반지가 아니라 진주반지였다.」

세 아이의 어머니

 날씬하다기보다는 마른편에 속하는 몸매. 관능적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여인. 그는 하루에 켄트 2갑을 태우는 헤비 스모거.  

 〈하오의 연정〉에서 공연한 개를 선물로 받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어느 날 개가 자동차에서 떨어져 죽자 이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한다. 소생으로는 전 남편에서 난 아들과 두번째 남편에서 얻은 두 아이를 합쳐 모두 3명. 그녀는 분명 아이들과의 단란한 생활을 원하고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프린세스 스마일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프로필 ,그리고 그 성처녀의 불가사의한 사생활의 일면이다. 물론 라이프 스토리 전부는 아니다. 스타는 스타답게 손이 미치지 않는 선망의 별이어야 한다. 스타는 스타답게 떨어지지 않는 우상이어야 한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더라도, 아니 부분적인 비밀이 존재해야만 호기심과 전설적인 신앙심이 두터워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비밀스러운 부문에 홍미를 갖게 되고 , 감추어진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며 꿈을 그린다. 그것은 스타와 팬과의 관계이다. 그래야만 영원한 소녀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란 직업(?)처럼 어려운 직업도 흔치 않다. 나이를 먹는 것도, 몸이 마르는 것도 뚱뚱해지는 것도 용서받기 어려운 직업. 그러나 현실적으로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이를 더해가는 걸 어떻게 하랴-. 오드리 헵번은 그 존재가 너무도 희귀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주어진 짐도 그만큼 무거웠고, 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로마의 휴일〉이 한국에서 공연되자 한국의 여성들이 너도나도 숏 컷을 했다는 기사가 당시의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토록 그녀는 한국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비록 그녀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났다 해도 그녀는 올드팬들의 노스탤지어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오드리 헵번을 노래한 이런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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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프린세스에 
가장 어울리는 
하얀 벨벳의 가운 
수정의 궁전 
무지개의 샌드위치 
그리움이 비치는 거울 

당신은 지금 
문 리버에 여행중에 
선녀에게서 받은 
날개 달란 신을 신고
빛나는미소, 사랑의 약속
한아름 꽃다발 
고히 뿌리면서… 

<스크린> 1984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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