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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걸음만, 하정우처럼

‘작심삼일’이라도 해보자던 신년 다짐도 가물거리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좀 달라지고 싶었는데 역시 ‘이번 해도 망’한 걸까요? 늦지 않았습니다. 새봄이 찾아오는 지금이 마음 먹고 움직이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더 스크린>의 ‘다짐 패키지’가 도움이 되실 겁니다.  편집부

다짐 패키지 #1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새해 결심 0순위는 단연 운동이지만, 매해 결심만 하기 일쑤. 장비와 운동복도 사야 하고, 강습도 받아야 하고. 운동을 준비하다가 미리 지친다. 그럴 때 마음 가는 운동이 ‘걷기’. 걷기만큼 단출하고 효과 좋은 운동이 없다. 시간과 ‘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제일 어렵다. 바쁜 일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게 그 두 가지니까.

2019년엔 걷기의 즐거움을 체험하고 싶다면, 조깅화보다 먼저 사야 할 책이 있다. 배우 겸 감독 하정우가 쓴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다. 그는 소문난 걷기 예찬론자다. 영화 홍보를 위한 자리에서도 빼놓지 않고 ‘오늘은 몇 보 걸었는지’ 이야기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걷기 모임’을 만들고, 주변 사람에게 전파하는 걸로 모자라 아예 책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걷기, 당신도 할 수 있다!’ 부류가 아니다. 하정우는 책의 서문에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썼다. 맞다. 그는 이 에세이의 꽤 많은 챕터에 그가 맞닥뜨렸던 실패와 슬럼프, 고통과 공포에 관해 이야기한다. 걷기의 즐거움만큼이나 고단함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쓴다.

세상에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너무 많다. 날씨가 흐리고, 기분이 나쁘고, 몸은 무겁고, 주변엔 이상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리고, 세상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주저앉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머릿속에 자책이 맴맴 돌 때, 하정우는 자신에게 ‘일단 한 걸음만’ 권한다. 여기선 ‘일단’이 중요하다.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2018 | ©문학동네

일단 한 걸음을 내디디면, 다음 걸음이 따라오고, 그렇게 걷다 보면 멀든 가깝든 어딘가에 닿게 된다. 실패와 슬럼프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발 빠져나와 바라봄으로써 멀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곳을 향해가며 실패와 슬럼프를 만나겠지만,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완벽한 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지만 살아가길 멈출 순 없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p.41

결국 삶이란 걷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날들로 이어져 있다는, 많이 걸어 본 사람 하정우의 솔직한 경험담이 주저앉아 있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어준다. 잠시 멈춰 쉬어도 괜찮지만 결국은 이 삶을 우리의 두 발로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유명인이 쓴 책은 종종 너무 매끈하거나, 너무 얄팍해서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하정우의 글에선 마치 종이책에 ‘저자 낭독 서비스’를 붙인 것처럼 그가 들린다.

마음의 소리가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외치는 날, 그가 옴쭉달싹 안 하려 드는 팔다리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상세히도 적어놓은 대목에선 빙긋이 웃음이 난다.

아, 걱정하지마. 지금 이렇게 힘든데 땀 흘리며 걷자는 건 아니니까. 그저 몸을 살짝 일으켜 앉아보자는 것뿐이야. p.156

찌뿌둥한 날, 하정우의 속삭임을 따라 상체를 일단 살짝 일으켜보자. 일단 성공이다. 곧 하정우처럼 걷고 싶어질 테니까.

editor 유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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