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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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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007

내가 그의 이름를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은 시가 아니라, 정언명령이었다는 걸 4년 전에 깨달았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주술. 그야말로 우연히 마주한, 주먹만한 털뭉치 아깽이에게 장난삼아 붙인 이름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저를 후려쳤고, 며칠을 안절부절 기다린 끝에 그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됐어요. ‘집사’의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애완, 반려, 동거 등등 그 ‘함께’를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든, 종이 다른 생물과 산다는 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입니다. 아무리 책을 읽고 공부해도, 이렇고 저럴 것이란 예측은 대부분 박살나죠. 이 작은 육식 동물은 인간 따윈 상상도 못할 생체 능력을 가졌지만, 상상 이상으로 연약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취향이 확고합니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느냐는 그야말로 케바케(집사들이 격하게 끄덕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것 같군요).

이 생명체는 대충 ‘좋아해주는 척’하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낯가림도 없고, 물도 밥도 가리지않고 척척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무릎 위로 달싹 올라와 애교로 뒹굴대는 ‘유니콘’ 같은 고양이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네, 암요. 세상엔 수많은 ‘엄친딸, 엄친아’가 존재하잖아요.

야심차게 ‘아낙수나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동물병원에서 부끄러움은 오롯이 보호자의 몫임을 대차게 깨닫고, ‘칼리시’(당시엔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이렇게 전세계적 망작이 될거라고 예상 못했거든요)가 될 뻔 했다가 그게 고양이 바이러스 이름이라는 걸 안 뒤, 결국 ‘하몽’으로 개명한 제 동거묘는 4년을 함께 살았지만 여전히 ‘액체처럼’ 제 손을 피해 다닙니다.

세상 겁많은 쫄보 주제에, 성질을 부리면 또 얼마나 고약한지 몰라요. 이름을 불러도 들은 체 만 체하다가도 배가 고프면 밥상을 차리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그러다가 잘 시간이 되면 제 베개 위로 뛰어올라 제 머리를 밀어내고 잘 자리를 잡습니다. ‘자, 이제 내 턱을 긁어주면서 나를 재워라’ 저를 빤히 보는 시선에 어처구니 없어하면서 명을 따릅니다. 그제야 지친 집사는, 지긋이 눈을 감은 고양이가 만족스럽게 ‘고르릉~’ 대는 소리를 (아주 잠깐!) 선물로 받습니다. 네, 자랑하는 거 맞아요. 

모든 현상에 ‘왜?’를 묻는 제 직업병은 고양이와 동거하면서 새로운 질문에 닿았습니다. 까다롭기 그지 없는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의 것을 제시하고, 숨죽여 반응을 살피고, 야멸찬 외면에 굴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찾는 실험의 반복. 전혀 낯설지 않은데, 뭘까? 브랜드, 미디어, 콘텐츠가 사용자의 관심과 사랑,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과 같습니다.

고양이에게 일반적으로 ‘이렇다더라’는 어림짐작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공자가 아무리 ‘좋다’고 우겨봐야 소용없죠. 일단 나의 최선을 보여주고, 좋은지 싫은지 사용자의 피드백을 예민하게 살피고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만 작은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모든 관계의 기반이 되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Don’t Judge’.

내 기준으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집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종(異種)의 생명체와 살면서 수십년 간 제가 겪은 소통의 실패가 실은 제 어림짐작과 섣부른 기대, 우격다짐의 결과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이 깨달음을 모아 언젠간 꼭 책을 낼 겁니다. 제목도 정해놨어요. <고양이는 알고 있다 – 고양이에게 배우는 소통의 100가지 법칙>. 이번 주 <더 스크린>에서 고양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소통의 몇 가지 법칙을 먼저 공유합니다. 귀여움에 홀려 읽기 시작했다가 잠들어 있던 영혼의 일부를 만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2020년 5월 9일

박혜은 편집장 드림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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