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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의 첫 <스크린> “감정을 남기고 싶다”

2018년은 단연 김용화 감독의 해다. 판타지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의 1편 <죄와 벌> 2편 <인과 연> 모두 ‘1,000만’ 클럽에 가입시켰다. 흥행사로서 그의 저력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3년 전 <미녀는 괴로워>(2006) 때다. 인기 만화를 영화로 옮긴 영화는 족족 망하던 시절이었다. 김용화 감독은 <오! 브라더스>(2003)으로 데뷔했지만, 그가 바랐던 데뷔작은 <미녀는 괴로워>였다.

김용화 감독이 제작사에 번번이 거절당했던 첫 영화를 기어코 손놓지 않았던 이유는 ‘한나’가 잊히지 않아서, 정확히는 그녀의 슬픔이 자꾸 밟혀서다. 돌이켜보면 슬픔은 그의 영화를 꿰는 맥이다. 그 시작이 12년 전 김용화 감독의 첫 <스크린> 인터뷰에 또박또박 담겼다. 편집자주

코미디든, 액션이든, 상업 영화든 농업 영화든 공업 영화든, 감정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판권을 구입한 뒤 영화화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미녀는 괴로워>의 초고를 쓴 건 <오! 브라더스>를 만들기 전이었습니다. 여러 제작사를 다녔는데 거절당하고 <오! 브라더스>로 데뷔했죠. 그 사이에도 <미녀는 괴로워>는 여러 작가와 감독의 손을 거치고 있었고, 나는 <오르페우스>라는 스릴러 영화를 준비하다가 중단되면서 잠시 좌절하고 있었고요. 다른 작품 제의도 많이 들어왔는데, ‘한나’라는 캐릭터가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녀는 괴로워> 각색에 참여했고, 결국 연출을 맡게 됐죠.

처음엔 왜 거절당했나요?

만화는 밝고 즐거운데, 시나리오가 너무 어둡고 진지하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물론 지금의 시나리오보다 완성도도 부족했겠지만.(웃음) <미녀는 괴로워>는 성형수술을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비애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못하는 심정적 불균형에서 오는 코미디라면 잘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어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내 생각을 피력할 수 있다는 소재도 좋았죠.

원작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던가요?

정말 훌륭한 만화예요. 그림도 막 그리고 가볍게 쓴 것 같지만, 인간의 피해의식과 콤플렉스에 대한 통찰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을 올곧이 보지 못하고 자승자박에 빠져요. 그 안에 삶과 행복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 김아중의 발견입니다.

한나 역할은 캐스팅이 쉽지 않았습니다. 성형 미인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노래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죠. 재기 발랄하고 과감하게 모험할 수 있는 신인을 찾았는데, 그 또래 여배우가 기근이에요. 그러다 우연히 드라마 <별난여자 별난남자>에서 김아중 씨를 봤어요.

우울한 캐릭터였는데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한나를 연기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김아중 씨는 어른스럽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큰 배우예요. 천성이 ‘트리플 A형’이고요.(웃음) 낯을 엄청 가리고, 목소리도 작은데, 숨겨진 끼가 대단하죠. 그리고 배우 주진모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은데, 정말 훌륭한 배우입니다. 감독인 내가 현장에서 그의 연기를 보다가 “진짜 멋있다!”고 감탄할 정도예요. 원래 현장에서 시연을 많이 하는 편인데, 두 사람 모두 단박에 기가 막히게 연기의 감정을 잡아내더군요. 거의 본능적이에요. 배우들 덕에 현장에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미녀는 괴로워>2006

캐릭터나 대사가 만화적이지만 이물감이 없이 자연스러워요.

시나리오 한 페이지 당 리허설을 10시간 정도 했습니다.(웃음) 배우의 여러 얼굴을 발견하고 장면을 윤택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죠. 그리고 웃기는 대사나 캐릭터는 “얼마나 웃긴지 봐라!”라고 작정하는 순간 100퍼센트 이상해집니다. 특히 개그 대사들을 과시하는 순간 관객은 “대체 나를 뭘로 보고 저런 개그로 웃기려고 하나!”라는 반감을 가져요.

재미있겠다 싶어서 한 프레임을 늘이는 순간 관객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무조건 빨리 닫아야 합니다. 오히려 황급하게 닫아버리면, 다음 신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고 영화 전체적으로도 리듬감이 생기더군요. 노하우라기보다는 그냥 감이에요.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의 공통적인 장점이 그런 리듬감이에요.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상업 영화의 틀을 따르는 것 같지만, 뻔하지 않죠.

상업 영화, 농업 영화, 공업 영화를 떠나서(웃음) 내게 영화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가 있을 뿐, 좋은 영화 나쁜 영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완벽한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벌어질 때 생기는 처연함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슬픔과 고통. 극단에 있는 감정 같지만 공교롭게도 이 둘은 공존하죠. 너무 기쁠 때 눈물이 나는 것처럼. 그래서 장면을 구성할 때 두세 겹 이상의 감정의 층을 두려고 해요. 기쁜 듯하면서도 약간 씁쓸하고, 씁쓸한 듯하지만 기쁨이 느껴질 때 감정의 균형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런 감정을 만드는 게 내 연출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성형 미인이라는 소재가 선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매그놀리아> <부기 나이트>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을 좋아하는데, 그의 영화 소재는 선정적이다 못해 살벌하잖아요? 영화는 인간에 관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관한 매체가 인간을 이야기하는데 부끄러울 소재는 없죠. 처음엔 <미녀는 괴로워>가 더 적나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고는 살벌했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다들 마음 속에 외모에 대한 차별과 계급을 두면서 왜 성형한 사람을 손가락질 하나,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제작사에서 경악하더군요.(웃음) 만화의 장점을 너무 제거하는 것 같아서 각색하면서는 그런 분위기를 조금 빼고 코미디를 강화했습니다.

김용화 감독 <스크린> 2006.12 | 사진 임아원
인간의 감정은 딱 두 가지죠. 슬픔과 고통. 극단에 있는 감정 같지만 공교롭게도 이 둘은 공존합니다.
그래서 한 장면에서 기쁜 듯하면서도 약간 씁쓸하고, 씁쓸한 듯하지만 기쁨이 느껴질 때 감정의 균형이 생기죠. 내 연출의 목표입니다.

코미디 장르에 애착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애착이 생겼어요. 20대엔 테크니션 감독을 좋아했고 촬영이나 미술, 컷 분할 같은 기술적 부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 넘어서부터는 기쁜데 기쁘지만은 않은, 슬픈데 슬프지만은 않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좋아요.

장르로 보자면 휴먼 코미디. 어린 시절에 태권도 선수이기도 했고, 액션 영화를 참 좋아하는 ‘성룡 키드’였는데 요즘엔 액션 영화를 잘 안 보게 돼요. 액션 영화라도 <다이 하드>처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액션을 소재로 가져온 영화가 아니면 눈이 잘 안 가더군요.

<다이 하드> 같은 액션 영화도 김용화 감독과 잘 어울릴 것 같네요.

1편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플롯을 가진 위대한 영화예요. 평생에 한 번은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헤어진 부인과 관계를 회복하러 왔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남자의 이야기. 사실 액션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영화죠. 액션이라는 형식을 빌려왔을 뿐이지. <미녀는 괴로워>나 <오! 브라더스>도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작<오! 브라더스>와 이번 <미녀는 괴로워>의 공통점은 자신의 결핍을 몰랐던 사람들이 결국 결핍을 깨닫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 결과 자신을 알게 되서 좀 더 행복해지는 이야기. 감독의 화두인 것 같은데요?

그런 셈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든 인물이 다 상처받았다는 거죠. 상준(주진모)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봐서 다신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있습니다. 뚱뚱했던 한나와 남자에게 속은 정민, 성형외과 의사라고 무시당해온 이공학(이한위)까지 다 상실감이 있지만 결핍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욕망에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볼 여력이 없는 거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20대에는 내 결핍을 몰랐는데, 30대가 되고 철이 좀 들면서 내 부족한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럼 욕심도 없어지고 겸허해지죠. 그렇게 나를 인정하면 오히려 내 상황을 즐기게 되고, 내가 소중해져요. 물론 어려운 일이죠. 나도 그걸 빨리 알아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웃음)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요?

감정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는 첫 번째가 감정, 두 번째가 서사, 세 번째가 리듬, 네 번째가 시선입니다. 물론 수순에 천착할 필요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 관객도 그렇지 않나요. 감정을 느끼려고 극장을 찾지, 비주얼을 보려면 다른 매체도 얼마나 많은데요.

앞으로도 감정을 남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만들면서 내가 즐거운 영화. 하고 싶지 않은데 먹고 살기 위해 만드는 영화는 안하려고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웃음) 요즘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 재미있어서 큰일입니다.

박혜은 기자 | <스크린>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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