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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진실을 이야기하게 됐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전에도 <칼라 퍼플>(1986), <태양의 제국>(1989)로 폭력의 세상을 고발했지만, 그의 시도는 “진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상업 영화 감독의 외도” 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달랐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차이가 ‘최초의 진실’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한다. <더 스크린> 편집부

난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동안 내 영화에서 ‘진실’ 을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47년 2차 대전 직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스필버그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유태계 이민3세다. 어려서부터 유태인 레스토랑을 다닌 어머니 덕분에 유태요리를 누구보다 많이 먹고 자랐고,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저씨는 자신의 팔에 나치가 문신한 수용수 번호를 이용해 어린 스필버그에게 숫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처참한 유태인 대학살 얘기는 소년 스필버그 가슴에 깊이 자리 잡은 셈이다. 스필버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그의 곁을 지나갈 때마다 손에다 입을 대고 휘파람을 불면서 유태인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때리고, 자습실에 동전을 던졌던 일도 있었다.

16세때 부모가 이혼하는 것을 보고 자란 그는 결손 가정에서 자란 자신이 외계인같다는 생각이 들어 <E.T>(1984)를 만들었고, 자신의 영화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도전을 주는 친구 같은 것으로 일관되게 작업해 왔다.

<쉰들러 리스트>1994

그러던 1982년, 그는 <쉰들러 리스트>를 만났다. 그때까지도 그는 겨우 <인디아나 존스>(1985)에 등장하는 나치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비겁한 유태계일 뿐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10년이 지난 1992년.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흥행의 귀재가 되었고,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매년 만들어 내는 헐리우드의 황금손이 되었다.

그 유명세만큼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진 것일까. “난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동안 내 영화에서 ‘진실’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그저 관객이 원하는 대로 햄버거를 만들듯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처음으로 진실을 얘기하게 됐다. 이혼이나 부모, 자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감히 말하려고 한다.

스필버그의 진실은 질투 많은 헐리우드도 감동시켰고, <쉰들러 리스트>의 박스오피스는(1994년 2월 현재 7위) 개봉 7주 만에 정상을 향해 치닫고 있다. 스필버그가 자신의 영화 15편으로 벌어들인 총 수입 40억 달러에 <쉰들러 리스트>는 과연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글 이우경(프리랜서) | <스크린> 19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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