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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당원, 호색한, 도박꾼 그리고 구원자

“나는 너를 찾을 거다. 그리고 죽일 거다” <테이큰>(2008) 이 배우 리암 니슨에게 두 번째 전성기를 선물했다면, 그의 첫 번째 전성기를 열어 준 영화가 <쉰들러 리스트>(1994)다. 리암 니슨은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비록 아카데미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필라델피아>(1994)의 톰 행크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겼지만, <쉰들러 리스트>가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 8개를 싹쓸이 한 데는 리암 니슨의 공이 컸다.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소위 선한 영웅이 아니다. 그 점이 중요하다. 위대하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도 대학살극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남을 살릴 수 있다. 리암 니슨은 누구라도 갖고 있을 인간애 한 조각를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지를 섬세하게 연기한다. <더 스크린> 편집부

오스카 쉰들러는 실제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관객에게 남겨주는 이 남자의 이미지는 혼란투성이다. 나치당원, 호색한, 도박꾼, 사랑의 구세주. 영화가 끝나도 이 궁금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 왜 어울리지 않는 기회주의자 호색한이 유태인 죄수 1, 100명 을 나치로부터 구해내는 데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넣고 목숨까지 거는 위험한 행동을 했을까. 당시 실제 쉰들러는 그 이유를 “강아지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게됐 다면 당신은 도와주지 않겠소”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러나 쉰들러는 자신이 구해낸 1, 100명 유태인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자신의 금이빨을 뽑아 녹여 만든 금반지에 새겨넣은 ‘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왜 “나는 한 명이라도 더 유태인을 구하지 못하였는가”라며 오열했다고 한다.

<쉰들러 리스트>1994

전쟁이 끝나고 쉰들러는 무일푼이 되었고 다시는 부귀로운 생활을 하지 못했다. 훗날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농장 일을 했던 쉰들러는 1974년 사망, 그의 소원대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시온산 카톨릭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스필버그는 이같은 상황을 잘 파악한 탓인지 쉰들러를 원작보다 덜 영웅적이고 더욱 모호한 인물로 묘사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스필버그가 묘사하는 장면들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리얼하다. 그 리얼함에 훌륭히 한 몫을 해낸 연기자는 아일랜드 토박이 연극배우 출신의 라이엄 니슨, 스필버그는 니슨을 쉰들러 역에 적응시키기 위해 故 스티브 로스의 녹화 비디오를 주었다. 로스는 타임 워너사의 회장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했으며 쉰들러 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하다.

글 이우경(프리랜서) | <스크린>19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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