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엔 넷플릭스를 켜고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American Horro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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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NEFLIX)를 처음 본 건 2018년 여름이었다. 시리즈별 포스터만 봐도 기이한 공포감을 주는 데다 여러 면에서 수위가 높다는 평을 들은 터라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다. 한데 제약이 따랐다. 여러 방면에서 높은 수위를 자랑하는 19금 호러 드라마다보니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영 마땅치 않았다.

결국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이 되어서야 넷플릭스를 켜고 이어폰을 꽂은 채 드라마를 봐야 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태블릿 화면 불빛에만 의지한 채 난도질 소리와 비명이 귀에 쏙쏙 꽂히는 공포 체험, 무엇보다 ‘다음 화’ 자동 재생을 내버려 둘 만큼 한 번 보면 멈추기 힘든 마성의 미드 호러는 한여름 밤의 길티 플레저가 되었다.

시즌 8까지 멱살 잡히듯 끌려오다 보니 이제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아호스>로 줄여 부르는 게 더 친근하다. 줄임말 ‘아호스’를 안다면 이 무지막지한 호러 별천지에 한 번쯤 발을 디뎠다는 뜻이고, 시즌 1 ‘저주받은 집’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포 영화에서 숱하게 다뤄온 ‘유령의 집’ 에피소드로 출발한 제작진의 배포에 의구심을 갖기 무섭게 시즌 1에서는 끔찍한 실화에 기반한 인물들이 등장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뒤엉켜 ‘한풀이 하우스 막장극’을 벌인다.

신체 절단과 훼손은 기본이요, 유령과 섹스 등 자극적인 장면이 난무한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이든 유령이든, 나이가 들었든 젊든 ‘끗발 센 언니’ 캐릭터들이 이끄는 이야기의 힘은 마력에 가까웠다. 그중에서 사라 폴슨과 제시카 랭의 캐스팅은 <아호스> 시리즈의 성공 비결로 꼽을 만하다.

매 시리즈마다 출연진이 다른 배역을 맡는 ‘크로스 캐스팅’ 전략 덕분에 두 배우가 시즌 1부터 4까지 차례대로 영매-사이코패스 부인, 악한 수녀-야망에 찬 기자, 마녀 모녀, 사이코패스 배우-샴쌍둥이 자매라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에 매료될 수 있었다. 시즌 5부터는 캐시 베이츠가 제시카 랭의 바통을 이어 광기 넘치는 캐릭터를 도맡으며 그야말로 신명 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안젤라 바셋, 엠마 로버츠, 레이디 가가 등 이름만 들어도 호화로운 여성 배우들이 꼭 맞는 캐릭터를 만나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는 에피소드가 줄을 잇는다.

<아호스>가 주제를 고르고 매만지는 방식도 예사롭지 않다. 시즌1 ‘저주받은 집’, 시즌 2 ‘정신병자 수용소’, 시즌 5 ‘호텔’에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봤을 법한 전형적 미스터리 괴담을 끌어 와서는, 죽음과 인간 본성을 지옥 끝까지 파고든다. 또한 전 시즌에 걸쳐 정치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데,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젠더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설정과 대사가 서늘하면서도 통쾌하다. 무심한듯 툭 튀어나오는 유머에도 놀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3 ‘마녀 집회’

특히 시즌 3 ‘마녀 집회’는 현대 마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세계 멸망을 다룬 시즌 8 ‘종말’로 이어지는 중요한 시리즈로 꼽힌다. 기형을 타고난 사람과 동물을 전시하는 서커스를 내세운 시즌 4 ‘프릭쇼’에서는 소수자 문제를, 로어노크섬 주민 증발 사건을 다룬 시즌 6 ‘로어노크’는 미국의 식민지사를 들추며 미국의 과거를 조명하고, 시즌 7 ‘컬트’에서는 2016년 미국 대선 결과가 촉발한 사회적 공포를 블랙 코미디 고어 장르로 풀어내면서 현실 공포의 직격탄을 날리는 식이다. 극중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소식을 들은 사라 폴슨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시리즈 역대급 장면이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10 포스터

아직 한국에 공개되지 않은 시즌 9 ‘1984’를 제외하더라도, <아호스> 시즌 1부터 8까지 단시간에 정주행 하기란 쉽지 않다. 편수로 치면 94편이고, 에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이 명품 드라마는 유해성,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 위험 부문에서 모두 ‘높음’ 등급을 자랑하는 ‘새빨간 맛 드라마’라서 한 시즌만 달려도 ‘기 빨림’ 증세가 오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럼에도 2020년 여름 <아호스> 재주행을 결심한 이유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다. 미국판 <전설의 고향>이라 불리는 호러 시리즈에서 봤던 공포의 실체2020년 한국 사회에 출몰하는 현실을 자주 본다. 집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미 만연한 혐오, 군중을 현혹하는 사이비의 득세 등등. 그 밖에도 앞으로 다가올 공포에 맞서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종의 독한 수련법인 셈이다. 그나저나 북미에서 올해 가을 공개된다는 시즌 10에는 매컬리 컬킨이 합류한다니 벌써 기다려진다. 부디 <아호스>가 약속한 시즌 13까지 무사히 제작되면 좋겠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하루빨리 시즌 9를 공개하시라.

editor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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