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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맛, 그래도 좋은 맛

대박 맛집의 레시피엔 의외로 별 비밀이 없다. 음식 한 그릇에 ‘이게 다 들어간단 말야?’ 싶을 만큼 좋은 재료를 풍성하게 넣고, 원칙대로 요리한다. 가장 중요한 건 ‘맛을 그리는’ 요리사의 능력이다. 재료 본연의 맛, 쓰임새를 알고, 조화롭게 간을 맞추는 실력. <극한직업>은 이제 ‘이병헌’이라는 요리사의 ‘브랜드’를 믿어도 좋다는 걸 보여준다.

<극한직업>은 이미 예고편에서 웃음 레시피의 ‘킥’을 공개했다. “세상에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영화의 웃음 패턴을 정직하게 예고하면서도, 대사 몇 개로 몇 번 웃기고 마는 영화가 아니라는 자신감이다.

<극한직업>2019

뭘해도 안되는 마약반 형사 5인방이 범인을 잡기 위해 위장 개업한 치킨집이 대박이 난다. 잘하는 걸 열심히 할수록 상황이 꼬이는 코미디의 틀은 잡혔다. 이 상황을 반복하기만 해도 클라이맥스까진 무리 없이 웃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형사고, 결국엔 본업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극한직업>의 진짜 실력은 여기서 발휘된다.

치킨집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고 마약반 5인방이 마약범 이무배(신하균)과 테드 창(오정세)가 거래하는 항구로 잠입한 사이, 경쟁자였던 최 반장(송영규)이 그들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극한직업>의 현명함이 빛난다. 사고뭉치인 줄만 알았던 마 형사(진선규)를 비롯해 육두문자 말곤 세 보일 게 없었던 장 형사(이하늬), 이상하리만치 정중한 영호(이동휘), 해사한 막내 재훈(공명) 그리고 20년째 만년 반장인 고 반장(류승룡)까지. 영화의 주인공이 왜 이 다섯 명이어야 하는지 반박할 수 없는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 <극한직업>은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극한직업>2019

클라이맥스의 대규모 액션 신은 ‘이제 웃기는 건 다 했으니, 액션을 넣어볼까?’ 정도의 볼거리 확장 장치가 아니다. <극한직업>을 ‘형사 범죄극’이라는 본업으로 복귀하면서 코미디의 구경꾼이었던 관객은 ‘불가능한 미션’의 응원자로 자리를 옮긴다. 관객이 주인공을 응원할 때 생기는 강력한 일체감이 보통의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끝날 때 느껴지는 헛헛함을 깔끔하게 잡아낸다. 상황 코미디의 벽을 넘어 히어로 영화의 지평에 발을 디뎠다는 점이 <극한직업>의 숨겨진 현명함이다.

배우의 쓰임과 조화도 똑똑하다. 이미 여러 차례 코미디 영화의 주재료로 쓰였던 류승룡은 영화 내내 되레 담백한 일상 연기로 호흡을 조절한다. 함께하는 배우들을 받쳐주다가 영화 말미에서 허를 찌르는 웃음은 ‘역시 류승룡’답다. 영화 초반 톡톡 튀는 맛을 내는 건 이하늬와 진선규, 짐짓 아껴두던 이동휘와 공명은 후반의 한방을 책임진다. 두 악당 역의 신하균과 오정세는 얹어두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당기는 화려한 고명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극한직업>2019

수많은 캐릭터를 조화롭게 힘 조절 한 연출의 노련함 속에서도 배우 진선규의 에너지는 독보적이다. 힘을 쭉 뺀 채로 코미디 리듬을 쥐락펴락하는 진선규의 내공은 무시무시하다. 강윤성 감독이 <범죄도시>로 진선규라는 보석을 발견했다면, 이병헌 감독이 <극한직업>으로 앞으로 한국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괴물’ 진선규를 깨웠다.

<극한직업>은 영화 속 대박 아이템인 ‘수원왕갈비 통닭’과 닮았다. 갈비 양념과 튀긴 닭. 누구나 아는 맛을 잘 섞으면, 누구나 아는 ‘좋아하는 맛’이 된다.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소재와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일 필요는 없다. 한동안 ‘지금껏 못 봤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불안의 결과로 탄생했던 백 억 원 규모의 한국 영화들이 간과했던 영화의 맛을 <극한직업>이 되찾았다.

에디터 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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