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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하든 우린 이미 한방 먹었다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인터랙티브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2018, 이하 <밴더스내치>)를 본 시청자의 설전이 흥미롭다. 공개 직후엔 꽤 열렬한 호평이 쏟아졌지만,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만듦새가 조악하다”는 평가는 비디오 게임 경험자층에서 두드러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이머들은 ‘사건’에 ‘개입’하는 인터랙티브 플레이에 익숙하다.

내가 게임 속 검객을 선택했다면, 직접 검술을 연마하고, 누굴 벨지 결정하고, 결국 세상을 구할지 멸할지, 끝없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밴더스내치>가 제시하는 단조로운 AB 테스트 정도엔 코웃음이 날 정도로 적극적 개입과 복잡한 선택을 즐겨왔다. 오랫동안 이런 인터랙티브 경험에 단련된 그들에게 넷플릭스가 “인터랙티브 요소를 영화에 접목했다”며 뻐기니 기가 찰 수밖에.

인터랙티브 형식은 사용자의 선택이 이야기를 좌우하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지만, 결국 모든 선택은 이야기 설계자가 짜놓은 구조 안에 머물 뿐이다. <밴더스내치> 캡처

그럼 게이머들은 정해진 스토리를 입에 떠 넣어주는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시시한 유흥이라고 여길까? 천만에. 오히려 연출과 스토리가 빼어난 게임을 “영화 같다”고 칭송한다. 게이머들은 결코 영화를 게임의 하위 카테고리로 깎아내리지 않는다. <밴더스내치>의 자충수는 자명해 보였다. 협소한 선택지와 그 선택이 불러오는 시시한 이야기의 향연. 그동안 <블랙 미러>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뼈 때리던’ 이야기꾼이 인터랙티브라는 ‘잔재주’나 부리는 허풍쟁이로 주저앉았고,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영화의 신세계를 열긴커녕 야멸차게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걸작의 가능성’이 튀어나온다. <블랙 미러> 제작진이 누군가? 기술 발달이 인간의 존엄을 뭉개버리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경종을 울려 온 그들이다. <블랙 미러>의 제작진은 하필 1984년을 배경으로, 조악한 그래픽의 인터랙티브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는 젊은 게임 개발자의 악몽을 들려준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봐, 앞으로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한다 해도, 멋진 인터랙티브 영화 따윈 없을 거야. 봐. 이렇게 시시하다니까?”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 직접 그린 밴더스내치 일러스트 ©2019 Moray Gallery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 직접 그린 밴더스내치 일러스트(사진 1)와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주인공 스테판(핀 화이트헤드)가 만드는 게임 밴더스내치의 이미지(사진 2), 스테판이 환각상태에서 본 밴더스내치(사진3)의 생김새는 매우 흡사하다.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에도 밴더스내치가 등장한다.(사진 4)

<블랙 미러> 시리즈로 이미 검증된 ‘스토리 깎는 노인’들이 일부러 무엇을 선택해도 뻔한 인터랙티브 스토리를 들고나온 건, 우리에게 그 ‘시시함’을 경험케 하려는 살신성인의 자세였을지 모른다. 의미심장하게도 ‘밴더스내치’는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괴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의 힘을 지녔다. <밴더스내치>로 인터랙티브 영화의 앞날에 직접 재를 뿌려, 손 놓고 속수무책으로 따라가야만 하는 영화의 일방적 스토리텔링 전통을 지켜내겠다는 뚝심. 그것이 바로 <블랙 미러> 팀이 <밴더스내치>를 만든 노림 수가 아닐까. 걸작이라 칭송하든, 졸작이라 깔보든, 어떤 평가를 내리던지 우리 모두 넷플릭스에게 한 방 먹었다.

에디터 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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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