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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무간지옥

비틀스 멤버이자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아이콘 존 레논은 멤버 간 불화로 골치가 아프던 시기에 사회 운동가 오노 요코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존 레논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반전 운동에 흠뻑 심취한다. 그 결실이라 부를 수 있는 불후의 명곡 ‘이매진 Imagine’은 첫 마디부터 당시로선 꽤 급진적인 메시지가 터져 나온다. “천국은 없다고 상상해봐. 해보면 쉬울 거야.” 종교의 충돌이 세상을 망쳐버렸다고 판단한 그는 천국, 지옥, 그런 건 없으니 매일 최선을 다해 살라고 감미롭게 부르짖었다. 존 레논과 전혀 다른 의미로 ‘반전’의 대명사가 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글래스>(2019)가 개봉했다. 그에게 존의 명곡을 개사해서 들려줘야 할 때가 왔다. “반전은 없다고 상상해봐. 해보면 쉬울 거야.”

차세대 스필버그. <뉴스위크>가 <식스 센스>로 데뷔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표지를 내주며 붙인 헤드라인이다.

데뷔작 <식스 센스>(1999)가 기겁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둔 다음 해, 샤말란은 <언브레이커블>(2000)을 내놓았다. 그의 비전은 확실히 한발 앞서 있었다. 아직 슈퍼히어로 장르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전이었고,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2000)이 막 시동을 걸던 참이었다. 샤말란은 예전부터 꿈꾸던 소시민적 슈퍼히어로 시리즈로 야심 찬 첫발을 내디뎠지만, <식스 센스> 같은 압도적 반전을 기대한 팬들에게 돌팔매를 맞았다.

물론 반전은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미스터 글래스’(사무엘 L. 잭슨)의 정체를 드러내는 깜짝 쇼는 반전을 위한 과욕이 자명했다. 이후 내놓는 영화마다 (꽤 신선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족족 <식스 센스>와 비교당하며 무릎이 꺾였던 그는 애초에 시리즈로 기획됐던 <라스트 에어밴더>(2010)의 경이로운 대실패에 이르러선 반전은 고사하고 기본 연출력까지 의심받는 수모를 당했다.

<언브레이커블>2000, <23아이덴티티>2017

그리고 2017년, <언브레이커블> 이후 무려 17년이 지난 시점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23 아이덴티티>(2017)가 ‘시리즈의 2부’로 깜짝 부활한다. 1인 23역을 해낸 제임스 맥어보이의 다중인격 연기와 촘촘한 시나리오는 샤말란이 여전히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걸 증명했다. 물론 이 영화가 <언브레이커블>을 잇는 시리즈란 사실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관객과 평단도 반전 강박에서 벗어난 감독의 귀환을 따뜻하게 환대했다. 동력을 얻은 샤말란은 대망의 시리즈 완결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브루스 윌리스와 사무엘 L. 잭슨도 흔쾌히 복귀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다시금 반전의 악령이 스멀스멀 감독의 등줄기에 들러붙기 전까지는.

<글래스>2019

<글래스>의 결말에서 감독은 반전을 다시 반전으로 뒤집는 이중 반전을 택한다. 반전의 무간지옥이다. 통제 불능의 24번째 인격 ‘비스트’가 깨어난 케빈(제임스 맥어보이)과 여전히 부서지지 않는 남자 던(브루스 윌리스)가 무서운 속도로 조우하며 불꽃을 튀긴 초반의 파괴력은 훌륭했다. 하지만 곧 반전의 재료가 될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급속도로 추진력을 잃는다. 새 캐릭터를 끼워 넣는데 진을 뺀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서 완벽하게 길을 헤맨다. 길 잃은 이야기 안에서 쉴새 없이 괴수로 변신하는 ‘비스트’는 거의 배우 학대 수준이고, 17년 만에 돌아온 ‘언브레이커블 맨’은 이야기 중심축에서 빠르게 사라져 옆방 노인으로 전락한다. 그리스 시절부터 내려온 서사의 원칙이 떠오른다. “주인공을 커튼 뒤에 오래 세워 두지 말라.”

<글래스>는 시리즈로 묶인 전작을 챙겨보지 않은 관객에겐 놀라울 정도로 불친절하다. 몇몇 작은 재미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전작을 챙겨봐야만 한다. 다만 3부작으로 완성된 세계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탓에 옛 영화를 복기한 시간이 반전의 무간지옥에서 헤매인다.

에디터 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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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