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TwitterInstagramYouTube1boon

<생일 > 이종언 감독 “주저 물러앉아 있는 우리를 위하여”

5년은 긴 시간이기도 짧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5년이 지났습니다. 누군가에겐 ‘아직도’ 잊히지 않는 고통이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매여 있느냐고 힐난합니다.

2019년 4월 3일(수) 개봉한 <생일>은 장편 극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바라봅니다. 간단치 않은 상황에서도 이종언 감독이 첫 영화로 <생일>을 만든 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약속은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상처 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일 겁니다. <더 스크린> 편집부

2014년 4월 16일 이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는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무 큰 비극이라서, <생일>을 극장에서 마주하는 데는 약간의 각오가 필요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상을 뛰어넘는 위로를 만났다는 느낌입니다.

잔인한 달, 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네요. <생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인터뷰를 위해 유가족들을 자주 뵈었어요. 함께 야외에 갔다가 식사를 하는데, 꽃이 피었더라고요. 꽃이 핀 게 조금 뭐랄까, 마음이… 한 분이 “저게 또 폈다”고 그러시더군요.

“저놈의 꽃이 또 피었다” 싶으셨겠지요.

맞아요. 딱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생일>을 만들면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안에 조금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확신이었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희망했던 게 있습니다.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의 아픔과 소중한 기억과 만나면 좋겠다는 희망입니다. 기대는 했지만 제 입으로 말은 못 했어요. 그런데 <생일>의 리뷰에서 “세월호 영화인 줄 알았는데, 내 이야기였고 우리들의 이야기였다”는 문장을 보고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생일>2019
<생일>은 있는 그대로를 가만히 잘 떠서 옮겨 담고 싶었습니다. 굳이, 감히 갈등을 더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첫 작품은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첫 작품에 창작자 자신의 모습이 담긴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종언 감독의 첫 영화 <생일>은 어떤가요?

제가 담겨있긴 한 것 같습니다. 예민한 성장기를 보내면서 느낀 개인적인 것들도 있어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2015년 여름, 안산에서 보낸 시간이 담겼습니다. 당시 안산에 여러 단체가 있었어요. 저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습니다.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필요하면 사진도 찍어드리고. 거기서 유가족분들을 만났는데, 저를 볼 때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복하셨어요. 이미 들은 얘기인데도 오늘하고, 내일 또 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에게 더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상처 입은 우리 모두를 위해 영화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요.

첫 영화로 <생일>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셨던 거군요.

결심이라기보단,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유가족께 말씀을 드렸어요. 영화를 만들겠다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연락도 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잘하라는 얘길 들으면서 <생일>은 제 안에 약속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었고요.

<생일>의 특별한 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라는 겁니다. 하지만 곱씹을 수록 ‘4월 16일’ 그날을 대하는 <생일>의 훌륭한 태도를 느꼈습니다.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싶고, 사건을 만들고 싶죠. 하지만 <생일>은 있는 그대로를 가만히 잘 떠서 옮겨 담고 싶었습니다. 굳이, 감히 갈등을 더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당사자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저 자신도 그 사건의 영향에서 한 발짝도 못 옮겨 나왔을지 모릅니다. <생일>을 만들면서 항상 그런 태도를 가졌어요.

촬영 감독, 음악 감독에게 감사해요. 더 좋은 것을 담고 싶고, 더 좋은 음악을 쓰고 싶은 게 창작하는 사람들의 본능인데, <생일>에는 그분들의 재능을 덜 담는 게 중요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구조와 공간에서 인물과 그들의 감정만 잘 보이면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 자체가 크고 세니까요.

<생일>2019, 촬영 현장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의 아픔과 소중한 기억과 만나면 좋겠다고 희망했습니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한 영화에서 만난 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이후 18년 만입니다. 캐스팅 확정됐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요?

명백히 행운이죠. 제가 쓴 시나리오에 함께하는 분들의 마음이 보태지는 것. 분명 전도연, 설경구 배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을 테고,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 의연한 분들을 제가 만난 것 자체가 저를 넘는 행운이었죠.

왜 전도연, 설경구여야 했나요?

전도연 배우는 제가 <밀양>(2007) 스크립터였을 때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영화에서 그 인물 자체인 배우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화에선 ‘순남’ 자체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설경구 배우도 같은 이유죠.

전도연 배우는 처음에 <생일> 출연을 망설였다고요.

시나리오를 보내자 연락이 왔어요. 전도연 배우를 만나러 갔는데, <밀양>의 아이를 잃은 엄마 신애가 떠오른다고 처음엔 거절했어요. 저는 여전히 전도연 배우를 원해서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요. 결국 다시 만났는데, 나중에 그러더군요. 계속 순남이 생각나고, 과연 내가 <생일>을 거절한 게 맞나? 싶었다고.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설경구 배우는 단번에 수락했다고요. 몇년 전에 본 설경구 배우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이 기억납니다. 4월 16일, 노란 리본이었죠.

네. 오랫동안 그랬죠. 정말 감사한 분이죠. 사실 시나리오를 드렸을 땐 한창 다른 영화 촬영 중이라서 수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일주일 후에 연락이 왔어요. “해야 할 것 같다. 안 할 수 없다.” 큰 힘을 얻었죠.

<생일>2019, 촬영현장 이종언 감독과 배우 전도연
전도연 배우는 제겐 언니였고, 언니는 제 이름을 부르던 사이였어요. 그런데 촬영이 임박해서 만났을 땐 절 “감독님”이라고 불렀어요.

카메라 뒤에서 두 배우를 보는 건 감독에겐 큰 희열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디렉션할 게 없었습니다. 이미 시나리오를 보고 현장에 오셨을 때 그 인물이 되어 있었죠. 그런데도 생각이 다를 때가 있죠. 전도연 배우는 제가 <밀양> 스태프였을 때 만난 사이라서, 제겐 언니였고, 언니는 제 이름을 부르던 사이였어요. 그런데 촬영이 임박해서 만났을 땐 절 “감독님”이라고 불렀어요. “혹시 내가 과하거나 순남이 아닌 전도연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면 얘길 해주세요”라고요. 연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을 때 감독이 이야기한 다른 결의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전도연 배우는 듣고 수용해서 다시 연기했어요.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촬영까지 더 좋은 장면을 선택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도연 배우의 순남은 첫 장면부터 온몸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바스락 마른 잎 같더군요.

순남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 때문에 주저 물러 앉아있는 사람인데, 처음엔 잘 안 보이죠. 평범한 많은 사람이 그런 것 같습니다. 직장에 가서 일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하지만 그들 안엔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습니다. 조금 다가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도 못 하게 주저 물러앉아 있죠. 그 옆에 그 마음을 받아 줄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손톱만큼이나마 낫지 않을까. 순남 옆에 정일이 온 것처럼요.

<생일>2019, 촬영현장, 이종언 감독과 배우 설경구
사람들이 정일의 어깨를 타고 가다 보면, 마음 속이라 보이진 않지만 피를 철철 흘리는 순남이라는 여자를 보게 될 거예요.

<생일>의 정일은 조금 독특합니다. 왜 그가 2년 뒤에 가족에게 돌아오도록 하셨는지?

맞아요. 설경구 배우도 처음에 그걸 물었어요. 장치가 많지 않은 영화인데, 정일에겐 장치적인 요소도 좀 있습니다. 2015년 늦가을에 <생일>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완성되고 관객이 보시려면 최소 3~4년은 필요할 텐데, 조금 멀리 떨어져 살던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찬찬히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설경구 배우에게 “사람들이 정일의 어깨를 타고 가다 보면, 마음 속이라 보이진 않지만 피를 철철 흘리는 순남이라는 여자를 보게 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한 마디에 설경구 배우는 정일을 바로 이해하고, 정일이 되어 촬영장에 나타났어요.

<생일>의 첫 장면, 정일이 집으로 가는 밤길을 보여주신 이유를 알겠네요.

또 하나는, 정일은 저 같아요. 2014년 4월 16일 당시에 저는 그곳에 없었잖아요. 팽목항에 가족이 있던 것도 아니고, 부르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곳에서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 유가족을 만났을 때도 바로 다가가지 못하고 쭈뼛거리게 되더군요. 설경구 배우에게 가끔 그런 말을 했어요. 정일이 저 같다고요.

아들을 잃은 순남, 정일 부부가 주인공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다른 유가족들, 옆집 가족, 무례한 친척, 친구를 잃은 아이들.

다들 실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옆집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단원고 주변에 빌라가 많아요. 참사 이후 빌라에서 많은 곡소리가 들렸죠. 처음에는 다들 같이 울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죠. 시간이 흐른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서 누군가는 그냥 울 수밖에 없고, 옆집 사람은 출근도 해야 하고, 자기 삶도 있지만 그 소리를 계속 듣는 거죠. 그 얘길 들었을 때, 이 고통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 고통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걸 담고 싶었어요.

<생일>2019
울음도 말이라서,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난 수호의 생일 모임 장면은 30분간의 롱테이크입니다. 배우들도 아마 생전 처음 하는 경험이 아니었을까요?

3일 동안, 참 제가 배우들을 힘들게 했죠. 실은 리허설 딱 한 번 하고, 실제 촬영은 두 번 만에 끝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전도연 배우가 “두 번만 했는데 왜 나는 하루 종일 앉아서 울고 있었던 거야?” 하더군요.(웃음). 여러 방향에서 카메라 세 대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지 않아도 다들 보듬고 울고 있었던 겁니다. 다 찍고 배우들이 제게 “이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더 고마웠어요.

생일 모임을 보면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 안에서 우리는 울어본 적이 있던가, 싶었습니다. 같이 우는 법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순남이 방 안에서 혼자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낼 때와 울음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울 때는 많이 다르죠. 울음도 말이라서,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함께 산에 오르고, 시간을 보내고, 진실 규명을 위해 같이 싸웠던 사람들이 있어서 말하고 울 수 있었던 거죠. 지금 그분들이 떠오르네요.

영화를 본 배우들은 어떤 말을 하던가요?

전도연 배우는 “극장에서 보니까 더 좋다”고 했고.(웃음) 설경구 배우는 혼자 봤는데, 보는 중에 감정이 북받쳐서 쉬어가면서 봤다고 하더군요.

제작자인 이창동 감독의 평도 궁금합니다.

영화를 준비할 때는 “초심을 잃지 말라”고, 편집본을 본 뒤에는 “영화가 소박하고 정직하게 나온 것 같다. 그게 좋다”고 하셨어요.

그럼 이종언 감독이 본 <생일>은 어땠나요?

제작자분들은 어떤 날은 이 장면에 울었다, 또 다른 날은 다른 장면에서 울었다 하셨는데. 제겐 더 좋고 덜 좋은 장면이 없습니다. <생일>의 매초 매 순간이 제 몸에 각인된 것 같습니다. 모든 장면이 제 안에 살아 있어요.

<시>2010 촬영현장의 이창동 감독
이창동 감독님께 배운 것으로 제가 영화를 만든 셈이죠. 영화 만드는 것뿐 아니라 영화를 향한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배웠습니다.

언제 처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사실 전 20대 중반까지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못 한 채 살았어요.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가 길었죠. 반항만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잘했다 싶어요.(웃음) 중고등학교 때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극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극장이 제가 위안을 주는 공간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영화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20대 중반을 앞두고,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극장에서 받은 위로 덕분일 겁니다. 물론 시도, 소설도 위로를 주죠. 그게 제겐 영화였나 봐요. 그렇게 시작됐죠.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박하사탕>(2000)이요. 영화를 본 건 한참 전이었지만, 너무 강렬하게 마음에 남아서 이창동 감독님 연출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알아보니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보내야 한대서 보냈고,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그렇게 <밀양>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자>(2009)와 <시>(2010)에선 인물 담당을 맡았죠.

이창동 감독님의 현장은 이종언 감독에게 어떤 배움터였나요?

명백히 자양분이죠. 이창동 감독님께 배운 것으로 제가 영화를 만든 셈이죠. 영화 만드는 것뿐 아니라 영화를 향한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배웠습니다. 이창동 감독님의 현장이 치밀하고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창동 감독님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모든 의견을 다 듣고 수용하는 그분의 태도가 어린 제 눈에는 ‘어른의 태도’ 같아서 존경합니다.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깨어 있는 ‘젊음’도 본받고 싶은 모습입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웃음)

<생일>2019, 이종언 감독
저는 이번에 영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거죠.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생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종언 감독이 다음엔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마음 안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있는데 아직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공통점은 누군가의 마음,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다는 거예요.

혹시 창작자로서 꿈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꿈이랄 건 없습니다. 다만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말을 한다는 건, 그걸 듣고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영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거죠. 꼭 영화가 아니라도, 듣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영화를 못 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짧은 시일 수도, 에세이일 수도 있겠죠.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생일>은 4월을 ‘기억하고픈’ 관객들이 꾸준히 극장을 찾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생일>이 우리의 아픔에서 시작된 것은 맞습니다. 아픔과 상처를 나누고 보듬는 이야기죠. 다만 영화를 만들면서 끝까지 계속 관객을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하고 집중하시기 좋을까. 혼자 관객을 짝사랑하면서 만든 영화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객과 만난 것 자체가 좋습니다.

에디터 박혜은 | 사진제공 NEW

Post a Comment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