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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와 <바베트의 만찬>

편집장의 편지 #002

20세기 거인들의 부고를 접하면 잠시 어질해집니다. 제겐 현재형이던 그들의 업적이 즉각 과거의 유산로 ‘기억’되는 부고 기사를 읽으며 헛헛한 마음이 드는 거겠죠. ‘샤넬의 기둥’ 칼 라거펠트가 2019년 2월 19일,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샤넬을 입어본 적도 없고, 패션에 영 무지한 제가 알고 있는 그의 단면은 많은 분이 아시는 것과 비슷해요. 럭셔리 패션계의 아이콘, 혁신가, 독서광, 팔불출 고양이 집사, 영화감독이자 배우, 극한 다이어터, 독설가.

하나를 덧붙이자면 <바베트의 만찬>(1987)에서 주인공 바베트가 입었던 북유럽 찌푸린 하늘색을 담은 옷과 망토. 칼 라거펠트의 작품입니다.

<바베트의 만찬>1987 스테판 오드랑과 칼 라거펠트의 의상 원화 | © Stéphane Audran / Karl Lagerfeld

음식 영화 걸작으로 손꼽히는 <바베트의 만찬>(1987)은 61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비롯해 영화제를 휩쓴 덴마크 영화입니다. 한국에선 뒤늦게 1996년에 개봉했는데, 흥행은 못 했어요. 이 영화는 굉장히 독특해요. 덴마크 작은 마을에서 평생 금욕적 삶을 살아온 노 자매에게 사연 많은 프랑스 여인 바베트(스테판 오드랑)가 편지 한 통을 들고 찾아옵니다. 차마 바베트를 내칠 수 없었던 자매가 그녀를 거두면서 14년을 함께 살아요.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가 엄청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됩니다. 부자가 된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에게 “프랑스식 저녁 만찬을 대접하게 해달라”는 묘한 부탁을 합니다. 바베트가 진귀한 음식들을 차려내면서 물 빠진 무채색 같던 영화에 색과 향과 맛이 차오릅니다. 흰 테이블보를 씌운 식탁에 와인과 프랑스 정찬이 오르내리는 광경은 마치 화려한 런웨이 같죠.

<바베트의 만찬>1987

마을 사람들은 내심 바베트의 만찬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값비싼 음식에 혀가 한번 현혹되면 허영을 탐하게 될까 봐서요. 하지만 만찬을 마치고 그들은 깨닫습니다. 예술가는 음식을 끼니가 아닌 예술로 만들고,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든다는 걸요.

칼 라거펠트의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바베트의 만찬>을 다시 봤습니다. 다시 보니 바베트는 마치 칼 라거펠트의 분신 같았어요. 바베트는 프랑스 최고 레스토랑 ‘파리 앙글레’의 요리사였습니다. 그는 고급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저녁 만찬에 복권 당첨금 1만 프랑을 모두 쏟아붓습니다. 전혀 아까워하지 않아요. 되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죠.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요. 예술가는 마음속으로 세상을 향해 외칠 뿐이죠.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다오!”

예전엔 뵈브 클리코 샴페인을 맛보곤 “레모네이드의 한 종류일 거야”라면서도 연신 잔을 홀짝이는 노 부인을 보며 킬킬거렸는데, 이번엔 뜨끔했습니다. “럭셔리 패션은 잘 모른다”는 말로 은근히 그것을 예술보다 사치로 취급했던 제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요.

<바베트의 만찬>1987

바베트를 연기한 배우 스테판 오드랑은 칼 라거펠트와 서로의 예술을 이해하는 오랜 친구였습니다. 오드랑은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붉은 결혼식>(1973)에 출연하면서 가장 중요한 의상은 따로 라거펠트에게 부탁했다고 해요. 라거펠트는 오직 그녀만을 위한 영화 의상을 만들었죠. <바베트의 만찬>도 오드랑의 옷만 라거펠트가 만들었어요. 오드랑과 라거펠트, 두 예술가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샴페인 잔을 부딪히며 바베트의 대사를 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다오!”

<바베트의 만찬>을 사랑하는 팬으로 칼 라거펠트의 영원한 평안을 바랍니다. 지금쯤 그가 지난해 먼저 떠난 친구 오드랑과 재회해 근사한 ‘바베트의 만찬’을 즐기고 있다면 좋겠네요.

2019년 2월 22일

편집장 박혜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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