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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부모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꾀죄죄한 몰골의 깡마른 소년이 통에 담긴 아기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사진 한 장만 봐도 <가버나움>(2019)이 무엇을 보여주려는 지 알 것만 같다. 비참한 세상을 견뎌내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 틀렸다. 보지 않고선 절대 알 수 없다. 누구도 감히 이 소년을 ‘불쌍히 여길’ 수 없다.

아마도 열 두살 쯤일 걸로 추정되는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 법정에 선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제 나이도 모르는 소년이 법정에 선 이유는 소년이 부모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죄목은 ‘나를 낳은 죄’. 심지어 소년은 이미 “어떤 개새끼를 찔러”서 5년 형을 받은 상태다. 영화는 별말 없이 어처구니 없는 재판장에서 벗어나 시간을 앞으로 되감아 자인의 삶을 지켜보게 한다.

자인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가에서 예닐곱 쯤 되는 고만고만한 나이의 동생들과 산다. 부모가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한탄하느라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아이들은 태어난 몫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내몰려 돈을 번다.

그래도 동생들과 사는 게 좋았던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가 초경을 시작하자 가출을 계획한다. 그는 초경만 하면 팔아치우듯 어린 딸을 시집을 보내는 어른들을 익히 봐왔고,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일 걸 안다. 하지만 자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닭 몇 마리에 팔려가는 여동생을 쫓아 뛰던 자인은 그 길로 집을 떠난다.

<가버나움>은 세계의 비참을 목격케 하는 영화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자인이 불법체류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면서 다른 문을 열고 달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의해 버려지고 방치되고 학대받던 자인과 라힐은 서로를 지키고 돌보고 축복한다. 잠시 외출했던 라힐이 사라진 뒤에도 자인은 제 덩치의 절반쯤 되는 라힐의 아들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을 꼭 붙들어매고 아기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닌다. 자인은 버림받았지만 결코 요나스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인이 선택한 삶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가버나움>의 세계를 손쉽게 지옥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세상엔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건네는 행인과 버려진 아이를 거두는 불법체류자와 앵벌이 시킬 아이를 낳는 부모가 공존한다. 자인의 부모도 악마가 아니다. 그저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그렇게 살아갈 뿐이라고 믿는 비겁한 어른일 뿐이다.

영화는 다시 재판장으로 돌아온다. 이 재판에서 자인이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 부모를 고발하기로 결심한 순간, 자인은 스스로 비참의 순환을 끊어냈다. 소년의 삶이 개벽하듯 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자인은 그의 부모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명작들과 비교해도, 가장 세찬 희망이다.

에디터 박혜은

<가버나움>의 배우들은 이전에는 단 한번도 연기해 본 적 없는 비전문 배우들이자, 실제 베이루트 거리에서 생활하던 난민이었다.

시리아 다라에서 태어난 자인은 내전을 피해 베이루트로 건너 왔고, 라힐 역의 요르다노프 시프로우는 베이루트에서 구두닦이 일을 하다가 캐스팅됐다. 그녀는 촬영 중 불법체류로 체포되었다가 제작진에 의해 석방되기도 했다.

요나스를 연기한 만 한 살 아기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역시 불법체류자. 영화 촬영 중 부모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영화 속 요나스는 남자 아이였지만, 실제 트레저 반콜은 여자 아이다.

<가버나움>은 레바논 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9년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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