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살리면 안되나요 <간호중>

시네마틱드라마 SF8 간호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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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민규동 | 각본 김지희 | 출연 이유영, 예수정, 염혜란 

가까운 미래, 로봇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도우미로 활용됩니다. 특히 보호자 얼굴을 똑같이 본 떠 만든, 독일산 간병 로봇 ‘간호중’이 인기죠. 30대 여성 연정인(이유영)도 10년간 혼수 상태인 엄마(문숙)를 돌보기 위해 ‘간호중’(이유영)을 구입합니다. 연정인과 간호중은 마치 쌍둥이 자매처럼 교감하기 시작하죠. 그러던 어느 날, 생활고에 지친 연정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하자 로봇 간호중은 ‘합리적’ 선택을 고민합니다. 식물인간 환자 대신 연정인을 살리면 안 되나요? 우연히 간호중의 질문을 접한 사비나 수녀(예수정)는 잘못된 선택을 막아야 합니다.           

민규동 감독은 마치 미리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가까운 미래 우리 사회가 겪을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간호중>에 세밀하게 담아냅니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질병은 사라지지 않은 세상, 도시 곳곳에 대형 요양 병원들이 거대한 무덤처럼 우뚝 서 있는 풍경이 <간호중>의 미래를 단숨에 설득시켜 버리죠. 

고단하고 힘든 일을 로봇에게 맡길 수 있는 미래지만, 더 살만해진 세상은 아닙니다. 보호자들은 똑똑하고 인간다운 비싼 ‘고급형’과 아주 기본적인 간병 기능만 탑재한 저렴한 ‘보급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보호자의 얼굴과 똑같이 만든 ‘간병 로봇’들이 유니폼을 입고 굉장히 인간 같으면서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환자들을 보살피는 광경은 슬프면서도 섬뜩합니다. 

<간호중>2020

인간이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를 완성하려고 하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 자체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기능 면에서만 본다면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닮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고 해요. 예를 들면 <인터스텔라>(2014)의 사각형 로봇 ‘타스’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의 원형 로봇 ‘BB8’처럼 디자인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죠. 하지만 ‘관계와 정서’가 포함된 일을 로봇에게 맡겨야 한다면 ‘더 인간적인’ 모습이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창조주 콤플렉스’도 작용하는 것 같고요. 

<간호중>의 인간을 꼭 닮은 데다 인간의 정서까지 돌보는 간병 로봇 ‘간호중’들은 우리 인간의 가장 ‘비인간적이고 모순적인 면’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돌보고 살리는’ 기능만 있는 로봇 간호중은 스스로를 해치려 하는 연정인을 살리기 위해, 연정인이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어떤 욕구를 읽어내고 대신 수행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가혹한 응징이죠. 연정인은 어쩌면 처음부터 간호중이 자신의 ‘마음의 죄’를 대신 짓고 그 죄의 벌을 대신 받는 ‘대속의 희생양’이 되어 줄 것을 바랐는지 모릅니다.   

민규동 감독은 원작 단편 소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의 간결한 문장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포착해 특유의 섬세한 이미지로 시각화합니다. 원작에선 모두 남성인 세 주인공이 모두 여성으로 바꾸면서 ’간병 노동’의 무게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죠. 특히 이유영, 예수정, 염혜란 배우의 캐스팅은 탁월합니다. 

<간호중>2020

간호중과 연정인, 1인 2역을 맡은 이유영은 자신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졌는지를 확인시킵니다. 로봇일 땐 기계적인 듯 따뜻하고, 인간일 땐 다정한 듯 비정해요. 역시 보급형 간병 로봇과 벼랑 끝에 몰린 보호자 최정길을 함께 연기한 염혜란 배우는 ‘무시무시하다’는 말밖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비나 수녀 역의 예수정 배우는 이 잔인한 ‘구원’의 메시지에 방점을 찍습니다. 

모순적인 인간과 그 인간을 사랑한 로봇, 삶과 죽음, 죄와 벌, 사랑과 고통, 원죄와 구원까지. <간호중>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을 둑 터진 듯 쏟아냅니다. 50분의 러닝 타임이 휘몰아치듯 흘러가요. 이 영화를 더 길게 보고 싶어집니다.  

지은이 김혜진 | 출판사 허블


원작 소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지은이 김혜진 | 출판사 허블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수년 동안 간병하던 중년의 아들과 ‘두 생명 중 한 명을 살려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빠지는 간병 로봇, 그리고 ‘생명의 전화’를 통해 간병 로봇의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님.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세 인물의 고뇌가 정갈하고 힘있는 문장으로 독자를 쭉쭉 이끌어갑니다.

연극 평론가와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해 온 김혜진 작가 첫 SF 소설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간호 로봇 ‘TRS’는 Trusting a Robot’ Study의 약자. 로봇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작가의 질문을 담은 이름이죠.

editor 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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