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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팔아버린 91회 아카데미

지난해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시상자로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무대에 올랐을 때, 할리우드 쇼 비즈니스의 관록에 박수를 보냈다. 1년 전 <보니 앤드 클라이드>(1967) 개봉 50주년을 맞아 기립박수 속에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던 두 거장 배우는 희대의 ‘봉투 배달 사고’ 대참사의 불명예 아이콘이 됐다. 1년 만에 다시 작품상 시상 무대에 선 두 거장이 “올해는 실수 없을 것”이라며 만담 콤비를 자처하다니. 아카데미의 실수 탓에 애먼 노장 배우들이 고생한다 싶으면서도, 불명예를 명예로 복원시키겠다는 아카데미의 판단은 근사했다.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시상자로 다시 무대에 선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

2년이 지났다. 당분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아카데미 위원회에서 시상식을 2주 남기고 귀를 의심케 할 소식을 전해왔다. 2월 24일(현지 시간) 열리는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생중계 3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4개 부문 시상 생중계를 생략한단다. TV 광고가 나가는 시간에 시상하고, 인터넷과 SNS로는 보여줄 테니 걱정 말란다. 광고에 밀리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부문은 촬영상, 편집상, 분장상, 단편영화상 4개 부문이다.

미국 촬영인 협회 100주년의 수모

왜 이 4개 부문을 뺐는지 설명 따윈 없다. 90년 생중계 역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하니, 시청률 그래프가 뚝 떨어진 부문인 걸까? 논란이 되자 아카데미 위원회 측이 “(생중계에서 빠지는) 4개 부문은 매년 바뀔 것”이라 말한 걸 보면 별 근거가 없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작품상, 감독상, 주연, 조연상 등 소위 ‘주요 부문’이 광고에 밀릴 일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문 닫기 전까진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뚝뚝 떨어지는 시청률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목을 죈다고 해도, 올해 촬영상을 건드린 건 해프닝 수준이 아니라 미국 영화 역사에 던지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올해 2019년은 미국 촬영인 협회 (American Society of Cinematographer)가 창립 100주년을 맞은 기념비적인 해이기 때문이다.

미국 촬영인 협회(American Society of Cinematographer)는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 영상을 공개했다. 잠시 감상해보면, 촬영상 시상을 광고 뒤로 날린 아카데미 협회의 결정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지 절감할 수 있다.

2월 14일(현지 시간) 미국촬영인협회의 벤 오 스톰 회장은 아카데미의 선전포고에 정중한 답신을 보냈다.

“영화 제작은 감독, 촬영, 편집 및 여러 분야의 공동 작업입니다. 이번 결정은 우리의 창조 과정을 분리와 분열로 인식시키고, 우리의 근본적인 창조적 공헌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아카데미는 전 세계의 주목 속에 우리의 예술성을 대표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91년 전 설립 이래 아카데미 시상식은 촬영 감독의 재능과 영화에 기여한 공로에 존경을 보내왔습니다만, 우리는 이번 결정을 조용히 넘기지 않겠습니다.

91회 최다 후보작 <로마> 알폰소 쿠아론의 분노

세상에 방송사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딱 두 개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는 스포츠 중계와 ‘길고 긴 수상 소감’을 멈출 수 없는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 시간을 사수하고자 가장 단출한 소감을 발표한 수상자에겐 여행 상품권을 준다거나, 미리 감사 인사 명단을 받아서 자막으로 처리한다는 아이디어도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젠 아이디어가 다 떨어진 걸까? 최소한의 유머 감각마저 상실한 아카데미 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자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비난과 분노가 쏟아지는 건 자명한 일. 우선 올해 아카데미 10개 부문 최다 후보를 낸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차진 트윗으로 포문을 열었다.

“영화의 역사를 보자면 소리가 없어도, 색깔이 없어도, 각본이 없어도, 배우와 음악이 없어도 걸작은 탄생했다. 그 어떤 영화도 촬영과 편집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지난해 자신에게 감독상을 건넨 아카데미에 야멸차게 직격탄을 날렸다.

“촬영과 편집은 영화 기술의 정수다. 연극이나 문학에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 영화 그 자체다”

관객의 명령, #PresentAll24

탄생한 순간부터 영화는 ‘예술’이 되고자 했다. 전통적 예술의 범주에서 보자면 영화는 너무 다양한 영역의 ‘짬뽕’이었고, 영화는 그 특성을 스스로 ‘종합 예술’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의 결정은 영화의 정체성인 ‘종합’을 해체해 몇몇 화려한 요소만 떼어내 팔겠다는 심산이다. 아카데미는 영화를 예술로 대우하기를 포기한 셈이다. 아카데미가 스스로 버린 지위를 누가 복원할 수 있을까.

관객이다. 영화는 관객 앞에 상영될 때, 비로소 생명을 가진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라면 해시태그 #PresentAll24 퍼포먼스에 동참해보자.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각색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분장상, 주제가상, 음악상, 외국어영화상, 단편영화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단편 애니메이션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다큐멘터리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24개 부문 모두를 예우하라는 관객의 명령이다.

editor 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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