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언택트 시대의 컨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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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009

지이이이~~~잉, 뚜우우우우~뚜뚜~. 
“재난이야?” “응, 재난이야.”

음료를 주문하려고 제 앞에 줄을 선,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이 익숙하게 재난 알람을 처리합니다. 그리곤 어떤 음료를 마실지 대화를 이어갑니다. 넓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잔잔한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가 경고 알람으로 화들짝 깨졌다가 다시 평온해지는 데,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이제 정말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렸구나. 또 한번 기묘한 현실을 흠뻑 체감했습니다.

마스크 없이 콧속으로 훅 밀고 들어오는 바람이 낯설고, 깜빡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으면 발가벗은 기분이 든다거나, 대중 교통에서 마스크 안쓴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립니다. 물론 코로나19의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테고, 이 재난도 반드시 지나갈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삶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협박이나 비관이 아닙니다. 이 강력하고 광범위한 공통의 경험은 우리의 인식, 사고의 기준점을 이미 옮겨버렸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없애는 것’ 혹은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옮겨진 기준에 합당한 새로운 답을 찾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밀키트’ 같은 거죠. 지난 몇년 간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맞춰 계속 커지던 간편조리 밀키트 시장은 이번 코로나19 사대를 계기로 외식업계의 단연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지만, 소비자로서 확연한 변화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늦은 밤 뻔한 배달음식에 물린 제게, 10분이면 뚝딱 근사한 한끼가 완성되는 품질 좋은 밀키트는 감동이었어요. 길게 줄 서야하는 수고없이 맛집의 음식을 시간 구애 받지 않고 내가 원할 때 먹을 수 있는 경험이 소비자인 제 생활 패턴을 또 바꾸겠죠. 

요즘 언택트(비대면 혹은 비접촉, Uncontact의 줄임말)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모든 신조어가 그렇듯, 천지개벽하듯 번쩍 나타난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죠. 재택근무, 원격수업, 밀키트, OTT 서비스 등 사람들이 직접 몸을 이동해서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지 않고도 일하고,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삶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언택트와 컨택트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처럼 몰아가지만, 엄밀히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모임을 갖지 않고, 극장에 가지 않고, 식당에 가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을 리 없잖아요. 대신 예전엔 하지 않았을 질문을 합니다. ‘내가 직접 몸을 움직여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변화는 결국 이제까지 질문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의 ‘독점력’이 사라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과연 그 식당은 줄을 서서 먹을 만한 곳인가? 과연 이 영화는 내가 마스크를 쓰고 극장에 가서 볼 만한 것인가? 이 만남은 내가 길에 몇 시간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들은 변화를 각성했고, 각성 이후엔 진짜로 필요하고 원하는 것만을 위해 움직일 겁니다.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왔지만 딱히 불필요했던 컨택트는 언택트로 대체되고, 반드시 컨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더 예민하게 선별할 겁니다. 하던대로 하는 것들이 사라지겠죠. 솔직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를 포함한) 사용자의 각성에 답을 찾는 것이 숙명이니까요. 게다가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한가지 확실한 건, 모 아니면 도 식의 양자택일의 예측은 쓸모 없다는 겁니다. 언택트와 컨택트, 온라인과 오프라인, 단절과 연결의 경계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분명히 ‘닿아주길’ 원하는 그 과녁에 가 닿아야 합니다. 계속 새로운 시도로 말을 거는 수밖에 없어요.

한국 최초 ‘게임 유저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박윤진 감독을 게임 ‘일랜시아’ 안에서 게임 캐릭터로 만나 인터뷰한 ‘[인 게임 인터뷰] 어서와요. 방치된 숲 일랜시아’ 기획과 그를 다시 직접 만난 인터뷰 ‘버려진 일랜시아에서 현재를 산다’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기획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동영상 콘텐츠 ‘무비드링킹’은 영화 속 술 한잔에 담긴 인생, 영화 속 차 한잔에 담긴 사색을 함께 음미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혼술, 혼영은 편하지만 조금 외롭잖아요. 그럴 때 친구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 한 잔, 거하게 기울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2020년 6월 4일

박혜은 편집장 드림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

환영합니다. 2019년 1월 문을 연 영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더 스크린>은 가치 있는 문화 생활을 원하는 여러에게 더 좋은 경험을 약속하는 ‘컨시어지 미디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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