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도봐도 지치지 않을 영화, 그리고 앤 공주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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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순 없지만, 시간을 초월할 수는 있습니다. 클래식의 힘이죠. 오드리 헵번은 그 자체로 ‘클래식’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낡기는커녕 점점 새로워집니다. 끊임없이 오드리 헵번의 고전 영화가 ‘기획전’ 형식으로 스크린 위에서 살아나는 이유이기도 하죠. 숏컷과 아이스크림, 담뱃대와 진주목걸이, 통기타와 문리버, 집채만한 모자와 드레스.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는 헵번은 이런 이미지 조각을 넘어, 여성 서사의 새로운 도전으로서 클래식이 된 그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편집자 주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 추억의 명화

ROMAN HOLIDAY 로마의 휴일

유럽 각지를 친선 방문중인 중앙유럽 어느 왕국의 왕녀 앤은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숨을 재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의 꽉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겨우 스무 살 안팎의 그녀로서는 무리한 스케쥴의 연속이었다. 각국 대사와 정계·재계의 거물들과의 접견, 기자들과의 회담 등을 치르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긴 드레스 밑에 가려진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철부지이기도 했다. 

 품위있고 아름다운 몸가짐, 게다가 외국어까지도 몇 개씩 유창하게 구사하는 젊은 공주를 어느 나라에서건 가만 둘 리가 없을 건 뻔했다.  공식적인 일정에 시달리다 못한 공주는 드디어 신경과민 증상까지 보여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을 내곤 했다. 수행 시종들은 공주가 너무 피곤해 함을 주치의에게 알렸고 의사는 하루만이라도 휴식을 취하도록 권해, 다음날 공식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다.  앤 공주는 의사의 처방대로 안정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하루는 적어도 그 지긋지긋한 접견이니 회담이니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계속 웃고 있자니 입도 아프고 다리도 퉁퉁 부어 울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내일은 해방인 것이다. 내일에 대한 기대 탓인지 안성제를 먹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들고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때마침 주위에는 시녀도 없었다. 공주 앤은 충동적으로 로마 거리에 나가보고 싶어졌다. 늘 이리저리 모셔다 주기는 했지만 진짜 로마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고 있는 터였다. 앤은 재빨리 옷을 갈아 입고 몰래 궁전을 빠져나왔다. 로마의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수수한 스커트에 블라우스 차림의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앤은 신이 나서 거리를 쏘다녔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 먹은 안정제의 약효가 지금사 발동되는지 눈꺼풀이 점점 무겁게 내러앉기 시작했다. 앤은 스 페인 광장에 있는 벤치에 쓰러져 세상 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마침 한 건장한 청년이 스페인 광장을 지나가던 길에 벤치 위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청년 죠 는 미국 신문기사로 로마 특파원이었다. 이번 앤 공주의 유럽 순방을 따라다니며 특종 기사감을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별다른 특종 감을 잡지 못해서 궁리도 할 겸 광장을 거닐고 있다가 웬 젊고 예쁜 여자가 겁도 없이 벤치 위에서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천성이 착한 죠는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가 없었다. 티없고 품위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죠는 생각 끝에 일단 자기 하숙으로 데려가 하나 밖에 없는 침대에 앤을 누이곤 자기는 소파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잠이 깬 앤은 왜 자기가 낯선 침대 위에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밝은 아침 빛에 앤을 자세히 본  죠는 그제서야 자기가 찾아 다니던 특종감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 길로 신문사 로마 지국에 달려간 죠는 지국장에게 특종을 쏠 테니 보너스나 두둑히 준비하라고 큰 소리를 쳤다. 어리둥절해 있는 지국장을 뒤로 하고 평소부터 단짝인 사진기사 어빙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빙도 신문에서만 보던 공주의 모습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무런 기미도 알아차리지 못한 앤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그동안의 호의에 대해 죠에게 감사를 표했다.  죠와 어빙은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척하고 자기들 신분도 감춘 채 자기들과 함께 로마 시내 관광을 다니자고 제의 했다. 앤도 모처럼만에 얻은 자유이고 아직 시간도 충분한 터라 가볍게 승낙하고 그들을 따라 나섰다. 이때부터 어빙은 라이터 모양의 소형 카메라로 앤의 행적을 모조리 찍기 시작했다. 가끔 주책없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투의 말을 꺼내 죠로부터 테이블 밑으로 발길질을 당하기도 하면서. 

 앤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뷰티 살롱. 머리 손질을 하는 곳이었다.  앤은 탐스러운 긴 흑발을 당시 유행하는 짧은 커트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앤을 맡은 남자 미용사는 앤이 머리 자르는 것에 자기가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른다. 조금 잘라놓고 “이만하면 됐나요?” 하고 거듭고듭 묻다가 앤이 단호하게 아주 짧게 자르라라고 하자 그때야 하는 수 없이 가위를 용감하게 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거울에 비친 앤의 모습은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청초하고 가냘피 보이게 하던 긴 머리를 자르자 생기발랄하고 야생화처럼 생생한 말괄량이로 변한 것이었다. 미용사는 앤에게 반해 밤에 해안에서의 댄스 파티에 초대를 했다. 

 이때쯤 대사관에서는 앤 공주의 실종이 알려져 발칵 뒤집혀 버렸다. 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나가 버렸으니 방향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체면상 뉴스로 발표해 공개적으로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본국에서 수십 명의 비밀 조직원이 급히 날아와 조용한 가운데 수색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 발표로는 공주가 몸이 아파 며칠 쉬고있는 중이라 해두었다.

<로마의 휴일>(1955) © 스크린

 한편 죠와 앤은 신나게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카페 테라스, 토레비의 샘, 진실의 입 등등. 거짓말한 사람 손은 잘린다는 죠의 말에 조심스레 손을 넣었다가 빼낸 앤, 그리고 손을 집어넣었다가 잘렸다고 익살을 떠는 죠. 어빙은 또 그대로 신이 나서 숱하게 담배를 피는 척 카메라를 눌러댔다.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거리의 화가를 치는 소동을 일으켜 경관에게 주의를 받기도 하는 등,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앤은 낮에 미용사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을 데리고 해안으로 갔다. 작달막한 미용사는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나 황홀한 듯 춤을 청하고는 “잠깐만요” 하더니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앤의 앞머리를 다시 빗겨 주었다. 신이 난 것은 미용사뿐 아니었다. 죠와 어빙도 특종 잡은 감격에 춤추는 둘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요소마다 지키고 있던 비밀 특파원들이 앤을 발견했다. 고이 데려가려 하자 앤이 반항하고 급기야는 죠와 어빙까지 합세해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악단이 있는 곳에 올라가 기타로 자길 잡으려는 특파원 머리를 용감하게 후려치는 앤. 어빙이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해 “한번 더!”라고 소리치자 대만 남은 기타로 또 한번 내리치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된 파티장에서 도망나와 죠와 앤은 강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추적에서 벗어났다.

 어두운 해안으로 해엄쳐 나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은 똑같이 아주 순수한 사랑의 교감을 느끼곤 입 을 맞춘다. 서로들 마음속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죠의 아파트로 돌아온 앤은 엉망이 된 몸을 씻고 커다란 죠의 파자마로 갈아 입었다. 죠가 앤을 바라 보더니 낮게 말을 했다. “인생이란 반드시 생각대로 되지는 않아.” 앤은 죠의 말을 듣고 죠가 처음부터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자기가 한 나라의 공주임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알고 있는 그녀였다. 죠는 앤을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었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이미 예정된 이별이었다. 죠도 앤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미 싹텄기에 아픈 이별이기도 했다. 죠는 특종 기사를 위해 써두었던 메모지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앤 공주가 로마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기자회견이 대사관에서 열렸다. 죠와 어빙은 정장을 하고 참석했다. 하나씩 악수를 나누던 앤이 그들 앞에 머물렀을 때 커다란 눈에 잠시 흔들림이 스쳤다. 앤은 죠를 바라보면서 “이 로마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은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숨은 뜻을 알고 있는 죠는 말없이 목례를 건넸다. 

 어빙이 그동안 몰래 찍었던 사진뭉치를 죠가 앤에게 넘겨주었다. 살짝 꺼내본 사진 한 장에 기타로 비밀특파원 머 리를 내리치는 장면이 찍혀져 있었다. 앤은 살폿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 사람만의 영원한 비밀이 생겨난 것이다. 시종을 거느리고 공주가 퇴장하자 기자들도 하나씩 흐트러져 떠나갔다. 넓은 홀에 미동도 않은 채 혼자 서있는 죠. 치미는 뜨거운 기운을 누르려는 듯 언제까지 서 있을 듯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로마의 휴일>(1955) © 스크린

윌리암 와일러 (1902~81)

독일 태생의 미국 감독. 조감독을 거쳐 1925년에 짧은 서부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그의 전성기는 1936~42년 동안이다. 〈지저벨 Jezebel〉(38),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lts〉(39), 〈편지 The Letter〉(40), 〈작은 여우들 The Little Foxes〉, 〈미니버 부인 Mrs. Miniver〉(42) 등의 걸출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개성있는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와 무려 세 작품을 함께 만들었고, 〈미니버 부인〉에는 그리어 가슨을 픽업,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쟁 동안(1942-45) 에는 미 공군을 위한 다큐멘타리를 만들었고 종전 후 첫 작품 〈우리 생애 최고의 해 The Best Years of Our Lives〉로 다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50년대로 넘어오면서 〈로마의 휴일〉(53), 〈우정 있는 설복 Friendly Persuasion〉(56), 〈벤허 BenHur〉(59)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60년대에는 〈백만장자가 되는 법 How to Steal a Million〉(66), 〈화니 걸 Funny Girl〉(68) 이 알려진 작품인데 전성기의 질적인 수준에는 못 미치는 영화들이었다. 오스카 감독상을 세 번(미니버 부인, 우리 생에 최고의 해, 벤허)이나 수상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그의 작품들을 모두 합해서 볼 때는 총 14개의 각 부문 오스카를 안았다.

오드리 헵번 (1929~)

벨지움 태생의 미국 배우. 1951년에 런던에서 댄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다가 1951년 〈The Lavender Hill Mob〉에 출연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역시 〈로마의 휴일〉 이후이다. 청순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50년대 새로운 여배우 상을 형성해 냈고 〈사브리나 Sabrina〉(54),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56), 〈녹색의 장원 Green Mansions〉(59), 〈파계 The Nun’s Story〉(59) 등이 전성기의 대표작들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64), 〈연인의 길 Two for the Road〉(66) 등으로 이어졌다. 후기로 올수록 초창기의 깨끗한 이미지가 완숙한 연기로 깊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에서도 그리 성공적이지를 못한 경향이 있다.

그레고리 펙 (1916~) 

 1944년 〈왕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으로 데뷰한 미국 배우. 미남 배우의 타이틀을 달고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 왔다. 꼽을 만한 작품으로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Spellbound〉(45), /〈건 파이터 The Gunfighter〉(50), 〈빅 컨추리 The Big Coun­try〉(58) 등이 있다. ‘60년대 들어서서는 공동제작도 했는데 아라베스크 Arabesque〉(66)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적역은 역시 서부의 총잡이인 것 같다. ’70년 대에 와서는 〈The Trial of the Cantonsvi­lle〉(72), 〈The Dove〉(74) 등 몇 작품을 제작했다. 근래에는 현역활동을 중지한 미국의 간판급 미남 배우이다. 

해설

<로마의 휴일>(1955) © 스크린

 신데렐라 얘기처럼 봐도봐도 지치지 않을 영화가 〈로마의 휴일〉이고 앤 공주의 오드리 헵번이다 외국 태생의 헐리우드 여배우 가운데 대스타로 꼽히는 사람은 ‘30년대의 그레타 가르보, ‘40년 대의 잉그리드 버그만, 그리고 ‘50년대의 오드리 헵번(벨지움 태생) 이다.

 데뷰작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까지 탔으니 헵번과 〈로마의 휴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후 15년 동안 그녀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든든한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 

 〈로마의 휴일〉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할리우드는 TV 수상기의 대대적인 보급에 의해 영화 관객이 부쩍 줄어 들어 영화사는 경영 위기까지 직면했다. 따라서 TV에 대항할 대형 스크린의 탄생이 시급했고 한편으로는 고정급여를 타던 감독, 작가, 배우 등이 방출되었다. 이른바 독립 프로덕션 시대로 들어서는 전환기였다.

 이들 독립 프로덕션은 메이저 사로부터 융자를 받아 영화 제작을 했는데 메이저 사들이 내놓은 자금은 각 사가 해 외에 갖고 있는 「동결 달러」였다. 이는 전후 미국의 정책에 의거한 것으로 해외에서 번 달러는 국내 유입을 금지시 키고 현지에서 쓰도록 한 소위 마샬 플랜 때문이었다. 이러한 해외 자본을 써서 만든 영화를 런 어웨이 (Run-Away) 영화라 부르고 있다. 〈로마의 휴일〉은 바보 그 런 어웨이 영화의 효시로 파라마운트의 동결 달러를 써서 만든 것이다. 

 줄거리는 영국 왕실의 러브 스토리를 주축으로 한 것인데 당시에는 왕실을 드라마로 한 기획이 몇 개 있었다. 더구나 타이밍의 문제로 인해 〈로마의 휴일〉은 단시간 내에 제작되어야 했다. 타이밍이란 다름 아니라 영국 왕실의 유명한 로맨스인 마가렛 왕녀와 타운센트 대령의 비련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어 있었고,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53년 6월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휴일〉의 앤은 마가렛 공주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분명 엿보이고 있다. 당시는 아직 전쟁의 잔흔이 남아있던 때이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시끄러웠던 때라 다분히 환상적인 왕실 이야기를 봄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크게 작용, 이 영화 외에도  〈데지레〉, 〈왕자와 무희〉 등이 발표되었다. 

 답답한 헐리우드를 떠나 로마 현지 로케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로마의 이곳 저곳을 눈요기시켜 주는 맛도 있다. (후일담이지만, 실제로도 로마에 대한 관광객의 호기심을 끄는 데 단단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스페인 광장, 카페 그레꼬, 콜롯세움 주변, 둘이서 추적을 벗어나 뛰어들었던 게벨 강 등등 ….  처음과 끝의 알현장, 즉 앤이 기사회견을 하고 중요인물을 접견하던 곳은 브랑카치오 궁전의 홀이었고, 죠의 아파트는 마르쿠타 거리에 있는 것으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아직도 17- 8세기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로마의 휴일〉은 여러가지 화제거리를 불러일으켰다. 소위 「헵번 스타일」이라 통칭한 숏 커트가 세계 각국 여성들에게 유행으로 퍼져 너도나도 미용실을 드나들었고, 사진기자역의 알버트가 매우 유용하게 썼던 라이터 모양의 카메라도 신기한 소품이었다.

 윌리암 와일러의 세심한 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끌어나가는 힘과 재미를 주었고, 그레고리 펙, 에디 알버트가 받쳐주는 헵번이 샛별처럼 반짝이는 깔끔한 영화라고 평을 받는 영화이다. 헵번이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을 받은 외에도 이안 헌터가 원작상 수상,  그리고 작품 · 감독 · 조연남우 · 각본 · 흑백 촬영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스크린> 1984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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