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츠바랑> 만나면 매일이 여름 방학

만화 요츠바랑

This post is last updated 31 days ago.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 출판사 대원씨아이

<요츠바랑>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내가 열여섯 번의 여름을 나는 동안, 요츠바는 단 한 번의 여름을 막 끝마쳤다. 2004년 1권을 발행한 <요츠바랑>은 지금까지 14권 중 무려 8권을 할애해 주인공 요츠바의 일곱 살 여름날을 담아낸다. 누군가의 여름을 이토록 진득하게 지켜본 적 있던가. 무엇보다 나는 요츠바보다 제대로 ‘여름을 겪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여름을 느끼는 모든 순간이 <요츠바랑>에 있다. 여름 방학과 함께 여름이 시작되고, 에어컨을 개시하고, 물놀이를 가고. 여름이 가나 싶을 때 태풍이 불어오고, 다시 뜨거워진 밤 불꽃놀이를 하고 나면, 어느덧 귓가를 때리던 매미 소리가 잠잠해지는 그야말로 ‘여름 컬렉션’. 

<요츠바랑>

<요츠바랑>은 제목처럼, 일곱 살 요츠바랑 세상이 만나는 매일매일의 이야기다. 표지를 쭉 늘어놓고 보면 요츠바랑 그 친구들의 활동 반경을 알 수 있다. 먼저 본진은 당연히 요츠바의 집. 요츠바랑 아빠가 단둘이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만화가 시작된다. 아담한 이층집엔 아빠 친구 점보가 종종 놀러 오고, 아빠 후배 야다도 가끔 점심 먹으러(=요츠바와 투닥거리러) 오기도 한다.

그리고 요츠바가 정말 ‘제집처럼’ 드나드는 옆집 ‘야야세 가(家)’에는 요츠바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라 부르는 야야세 부부와 아사기, 후카, 에나 세 자매가 살고 있다. 가끔 차를 타고 놀러 가는 경우를 빼면, 요츠바가 자전거를 타고 누빌 수 있는 동네 안이 요츠바의 작은 세상이다. 

네 컷 만화에 고등학교 소녀들의 학교 일상을 담아 크게 사랑받은 <아즈망가 대왕>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다음 만화 <요츠바랑>에서 ‘일상툰’의 또 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네 컷의 틀을 벗어난 작가가 그리는 요츠바의 세상은 작지만 섬세하다. 컷 안을 채우는 풍경도 실사에 버금갈 만큼 현실적이고, 등장하는 제품은 실제 모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츠바가 (비싸지만) 맛있다고 자랑하는 우유, 아빠가 구입하고 뿌듯해하는 커피 그라인더, 레코드 샵에서 요츠바가 쓰고선 헤드뱅잉하는 헤드폰 등은 모두 ‘제품 번호’까지 나와 있는 실제 상품이다. <요츠바랑>을 읽다 보면 바다 건너 일본의 작은 동네를 걷다가 초록 머리 꼬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츠바는 요즘 이것저것 안 게 많아. 페인트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거나 호박이 되면 과자를 받을 수 있다는 거나, 부채를 부치면 불이 무지 커진다는 거나, 따끔따끔이 안에 밤에 있다는 거나.” 

<요츠바랑>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 요츠바가 말한다. 나는 요츠바가 자랑하는 저 배움의 순간들을 다 함께했다. 그때의 놀라던 요츠바의 표정도 모두 알고 있다. 목장에 놀러 가는 날, 요츠바가 갑자기 아파서 취소하고 다다음 번에 목장을 갔던 일도 알고 있다. 현실의 시간에 비하면 <요츠바랑>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흐른다. 여전히 초등학생인 코난이나, 영원히 다섯 살인 짱구와 달리 요츠바는 하루하루 자란다. 

가장 최근작(이지만 2년 전 발간된) 14권에선 요츠바가 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지나 겨울에 막 도착했다. 이번에도 요츠바 표 ‘겨울의 모든 순간 컬렉션’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선 요츠바가 여덟 살이 되는 봄이 오고, 요츠바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겠지. 그때도 나는 함께 할 거다. 마치 학부모가 되는 심정으로.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가. <요츠바랑>을 보면서 내 기준이 더 높아졌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세상이 필요하다.

“…아이였을 때 생각해보세요. 요만한 거짓말을 했는데 천둥 치면 피해 다니면서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잖아요. 그런 자각이 몇 날 며칠을 괴롭히고.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해요.”

<탑클래스> 2019년 6월호

애정하는 뮤지션이자 배우 김창완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나는, 천둥 같은 거짓말을 하고 요만한 죄책감을 느끼는 어른이다. 나와 같은 ‘어른이’들은 주기적으로 <요츠바랑>으로 ‘순수 포션’을 챙겨 마셔야 할 의무가 있다. 

<요츠바랑>

아빠 앞에서 내뱉은 거짓말에 눈동자가 천둥처럼 흔들리는 요츠바, 자려고 누웠다가 “후카에게 우유 주기로 했는데 깜빡했다”며 늦은 밤 옆집에 가겠다는 요츠바는 김창완이 이야기한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살도록 도와준다. 아무리 재밌다고 소문난 예능 프로그램도 차가운 무표정으로 보다가 채널을 돌려버리는 내가 “푸하하!!” 같은 만화 웃음을 육성으로 내뱉게 해준다. 그러니까 작가님, 어서 15권을 주세요. 더 늦어지면 더 이상 내가 “푸하하!” 웃는 법을 잊을지도 몰라요. 빨리 주세요.

editor 박혜진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

환영합니다. 2019년 1월 문을 연 영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더 스크린>은 가치 있는 문화 생활을 원하는 여러에게 더 좋은 경험을 약속하는 ‘컨시어지 미디어’입니다.

여러분이 귀한 시간을 들여 읽고, 듣고, 보고, 경험할 ‘멋진 문화 콘텐츠’와 1984년 창간해 26년 간 천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전문 월간지 <스크린>의 독점 아카이빙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More Stories
여름밤엔 넷플릭스를 켜고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