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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나 본데, 우린 목숨 걸고 해”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웃음학개론

<극한직업>(2019)이 2019년 첫 천만 영화가 됐다. 해외 영화까지 포함하면 23번 째, 한국 영화로선 18번 째 기록. 이 중 코미디 영화는 <7번방의 선물>(2013)과 <극한직업> 딱 두 편 뿐이지만, 영화의 목적지가 끝까지 웃음을 향한 뼛속까지 코미디로선 첫 성과다.

코미디는 어렵다. 눈물은 혼자서도 흘릴 수 있지만, 웃음은 함께가 아니면 어색하다. 독립 영화 중에선 귀한 코미디였던 <힘내세요, 병헌 씨>(2013)의 총 관객 수는 3,748명. 상업 영화 데뷔작 <스물>(2015)로 300만 명을 웃기고, 세 번째 상업 영화 <극한직업>을 천만 코미디로 만들기까지 7년. 이병헌 감독은 이제 보편의 웃음을 조율하는 법을 확실히 깨친 게 분명하다. 더 스크린 편집부 

<극한직업>2019
모든 신과 모든 인물에게 코미디 요소를 넣겠다. 1분에 한 번씩 웃기겠다. 한번 작정해 보자.

<극한직업>의 흥행세가 엄청납니다. 이미 예고편 공개 때부터 반응이 뜨거워서 기대할 만했어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속도예요.

배우, 스태프와 열심히 작업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습니만, 이 정도의 스코어는 예상 못했습니다. 첫 주말에는 저도 놀랐어요. 수치를 보고 스태프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했으니까요.

실적 없는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 집을 위장 개업하는데, 소위 ‘마약 치킨’으로 대박이 난다. 더 물을 것도 없는 시놉시스입니다.

저도 그 명확한 한 줄에 흔들렸고, 유혹당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건 내가 한번 작정하고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웃으면서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극한직업>은 감정을 따라간다기보다,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이기 때문에 ‘한번 작정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캐릭터 코미디인 만큼, 배우 캐스팅이 중요했겠습니다.

일단 고 반장 역할에 류승룡 선배가 우선이었습니다. 예고편만 봐도 고 반장이 왜 배우 류승룡이어야만 하는지 설명이 되잖아요. 그냥 ‘류승룡’ 뿐이었습니다. 각색도 빨리 했어요. 배우 놓칠까봐.(웃음) 류승룡 배우가 캐스팅된 후에는 한시름 덜었죠.

다음 캐스팅은요?

바로 다음에 장 형사 역의 이하늬 배우, 마 형사 역의 진선규 배우가 거의 동시에 출연을 수락했어요. 두 캐릭터가 어찌보면 형사 장르 영화에서 전형성을 띄는 캐릭터들이거든요. 새롭게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극한직업>은 대중 영화고, B급, C급 코미디로 빠질 것도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여기에 이동휘, 공명까지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캐릭터가 유니크해졌습니다.

<극한직업>2019

진선규 배우의 마 형사 연기를 보면서, 저는 약간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마치 <넘버 3>(1997)에서 조필 역을 연기하는 송강호 배우를 봤을 때 무시무시함이랄까요? 이병헌 감독이 괴물을 깨웠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극찬이십니다. 굉장히 사랑스러운 캐릭터인데, 저는 진선규 배우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배우인 줄 알고 있었어요.(웃음) <극한직업> 캐스팅할 때가 <범죄도시>(2017)를 막 끝낸 때였어요. 진선규 배우가 상도 받고 항창 이슈가 되고 있었죠. 그때는 진선규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아도 <범죄도시>의 위성락 같은 역할이 아닌 이상, 신선해보였을 겁니다. 게다가 그의 연기력에 100% 신뢰가 있었어요. 물론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려워요. 진선규 선배도 코미디 연기는 처음이라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는 확신했어요. 연기 잘하는 배우는 뭘 시켜도 잘 할 거다. 현장에서는 진선규 배우가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맞았죠.

<극한직업>은 각색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각색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단 한번 웃겨 보자. 만드는 우리도 즐겁게 해보자, 작정을 했어요. 불필요한 에피소드와 인물을 삭제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마구 삽입하자. 분량은 지키고, 전체 이야기의 구조를 지키자. 코미디 영화의 흐름과 디름은 구조 안에서 생깁니다. 아무리 개인기로 웃겨봤자 이 리듬이 안 잡히면 재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각색 과정에서 구조를 새로 짰어요. 그 다음에 생각했던 건, 모든 신과 모든 인물에게 코미디 요소를 넣겠다. 1분에 한 번씩 웃기겠다. 작은 역할이라도 한 번 등장하면 반드시 웃기고 빠지도록 하겠다.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계속 걸으면서 생각하고 수정했습니다.

형사와 치킨. 이 둘의 결합이 일으킨 폭발력이 큽니다.

치킨은 배세영 작가 각색 버전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저도 보고 바로 웃었어요.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이 대사는요?

그것도 배세영 작가의 대사입니다. 이 대사와 장면이 예고편에서부터 이슈가 됐는데, 제겐 지분이 별로 없어요. 배 작가의 아이디어고, 그 장면을 류승룡 배우가 연기할 때 제가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 장면 찍을 때 한 마디도 안했어요. 류승룡 선배에게 말도 안 걸었어요. 이건 건드리지 말아야지. 너무 좋았거든요. 제가 한 건, 장면 사이즈 맞추는 정도?(웃음)

<극한직업>2019 예고편
그 장면 찍을 때 한 마디도 안했어요. 류승룡 선배에게 말도 안 걸었어요. 이건 건드리지 말아야지. 너무 좋았거든요.

이병헌 감독의 영화는 대사가 참 맛있죠. 특별한 신조어나 유행어를 쓰는 게 아니라 일상의 단어를 조합하데 리듬이 생깁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고른다면?

후반부 류승룡 선배의 “쏴…”(웃음) 그 장면은 저도 찍으면서 울었습니다. 너무 웃겨서.(웃음) 좋아하는 대사가 많은데, 웃음 속에서도 제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할 때의 대사를 좋아합니다. <극한직업>에선 류승룡 선배의 대사였어요. “소상공인 잘 모르나본데. 우리는 다 목숨 걸고 해.”

후반 액션 신이 <극한직업>의 현명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웃으면서 마약반 5인방을 따라온 관객에게 ‘보상’을 주는 장면인 것 같아요.

사실 액션은 자신이 없습니다. 정통 액션은 아니고, 이들의 숨은 능력치가 발현되고 관객에게 설명하는 게 중요했어요. 나머지는 무술 감독에게 모두 부탁드렸고요.

5대 100 액션 신은 <주유소 습격사건>(1999)이 떠오르더군요.  

<주유소 습격사건>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 영화도 이전의 많은 전통 코미디의 오마주로 탄생한 작품이고, 저는 <극한직업>을 오마주의 오마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옛 영화들이 남겨준 것들을 잘 활용해서 요즘 스타일로 잘 만들고 싶었어요.

후반 액션 신에서 <영웅본색>(1986) 주제가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當年情)’이 흐릅니다. 이병헌 감독다운 선곡입니다.

분명한 효과가 있을 거라고 계산했습니다.

<극한직업>2019

음악 사용료가 만만치 않았겠죠?

비싸요.(웃음) 너무 비싸. <스물>(2015)에 썼던 에어 서플라이의 ‘위드아웃 유(without you)’보다 더 비쌌어요. 하지만 <극한직업> 액션 신에는 처음부터 당년정 뿐이었어요. 다른 곡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드시 당년정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면?

아홉 살 때 <영웅본색>을 비디오로 빌려 본 이후 영화에 빠졌어요. 장국영은 예전에도,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배우고요. 나중에는 제 영화 취향도 멜로나 코미디로 바뀌었지만, <영웅본색>이 제 인생 영화죠. 그런데 제가 영화감독이 되서, 내 영화에 이 음악을 쓸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감격했습니다. <스물>에서 ‘위드아웃 유’ 액션 신은 정확히 연출로 의도한 장면이었어요. 음악의 템포와 액션 템포를 맞췄고, 음악에 따른 콘티가 있었어요. 그런데 ‘당년정’은 그냥 붙였는데 장면과 정말 잘 맞는 거예요. 보면서 울컥했습니다.(웃음)

이병헌 감독의 영화는 음악이 탁월합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으실 것 같습니다.

잡귀예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듣는 편이고, 그날그날 듣고 싶은 음알도 달라집니다.

또 <극한직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요?

영화 중간 태진아 씨의 ‘미안미안해’가 나오는데, 원래 배세영 작가 버전에선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 였습니다. 사과하는 장면이라서 의미가 통해야 했는데, 명절과 가족 코미디를 감안해서 ‘미안미안해’로 바꿨죠. 김태성 음악 감독님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극한직업> 음악에 관해 주문한 내용은 뭔가요?

버라이어티. 저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버라이어티하게, 다양한 음악이 영화를 끌어주길 바랐어요. 음악이 새로우면서 대중적이어야했습니다. 처음 버전에는 슬로바키아 민속 악기를 사용하고, 지금보다 더 밴드적이었어요. 재미도 있고, 연주도 훌륭한데 낯설더라고요. 조금 더 대중적이면 좋겠다고 말씀드려서 음악 감독이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죠.

<극한직업>2019, 이병헌 감독
웃음을 꼭 성공시켜야만 해요. 코믹한 장면인데 관객석에서 즉각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 없이 실패니까요.

코미디 영화를 잘 만드는 건 다른 장르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맞아요. 정말 어렵습니다. 웃음을 꼭 성공시켜야만 해요. 코미디 영화는 매 장면을 즉각적인 반응으로 평가 받습니다. 코믹한 장면인데 관객석에서 즉각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 없이 실패니까요. 그러나 웃을 때 느끼는 행복한 감정, 코미디 영화는 결국 행복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코미디가 좋습니다.

계속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이유겠죠?

제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죠. 보통 조금 울적하거나 웃고 싶을 때 가장 쉽게 찾는 해결책이 영화잖아요. 저도 그럴 때 코미디 영화를 찾는데 IPTV 목록을 쭉 내려봐도, 생각보다 코미디 영화가 많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코미디에 대한 목마름도 생겼고요.

반복적으로 보는 코미디 영화가 있나요?

예전엔 주성치 감독 영화나 잭 블랙의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코미디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코미디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르지만, 평가가 박하죠. 그렇다보니 웃음 뒤에 눈물, 감동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극한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으로 승부했다는 점에서 관객의 호응이 뜨겁습니다.

코미디 장르가 정말 어려운 데 반해, 평가가 박하다는 건 저도 불만 아닌 불만이 조금 있습니다. 약간 불편한 소재를 얹으면 비난 받기도 좋고요. 그걸 견디는 연출자 입장에선 더 어렵게 느껴지죠. <극한직업>에선 평가에 관한 강박을 내려놓았어요. ‘나는 영화인이 아니라 예능인이다’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웃음) 그랬더니 오히려 더 좋게 봐주시더군요.

 곧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시죠?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함께 맡았습니다. 서른 살 여자 친구들의 일과 사랑, 연애에 관한 시트콤 형식의 로맨틱 코미디예요. 시나리오는 가볍게 수다떠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그 다음 영화는 드라마가 중심이긴 한데, 제 영화다보니 코미디가 되겠죠?(웃음) 휴먼 코미디 장르가 될 것 같습니다.

<극한직업> 이후 ‘이병헌의 코미디’는 한국 영화계에 하나의 브랜드가 될 것 같습니다.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극장에 그냥 앉아계시면 영화가 웃겨드릴 거예요. 이 말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웃음)

에디터 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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