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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착한 영화가 아니다

“사람은 착해.” 이 말이 썩 칭찬은 아니다. 영화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의도는 선하지만, 또렷한 장점을 찾긴 어려울 때 “착한 영화”라고 돌려 말하곤 한다.

과거엔 약자를 지키는 법을 믿었지만, 지금은 “클라이언트가 법”인 대형 로펌에서 취직한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지우(김향기)를 법정에 세우려 한다. 본래 ‘착한 사람’이었을 순호가 지우를 통해 어떻게 변해갈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 <증인>도 착한 영화일까. 이한 감독의 연출로 영화의 선한 의도가 인물과 장면 안에 스며들면서, <증인>은 그저 ‘착한 영화’가 아니라 ‘좋은 영화’가 됐다. 이미 <완득이>(2011)와 <우아한 거짓말>(2013)에서 확인했던 바다.

<증인>을 줄거리로 요약하면 단선적인데, 실제 영화는 꽤 넓은 세계다. 순호의 세계와 지우의 세계, 전혀 연관 없던 두 세계를 가르던 경계의 둑이 터지고,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한 감독은 이 인물망 중 하나라도 빠지면 순호와 지우의 한 조각이 사라질 만큼 촘촘하게 다루는데, 영화는 전혀 번잡스런 데가 없다. 캐릭터를 ‘사건의 요소’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하면, 모든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이런데, 너는 어때?” 인물을 대하는 이한 감독의 태도는 <증인>에서 더 사려 깊어졌다.

이 사려 깊음은 지우를 ‘자폐아’라는 뭉뚱그린 말 대신 2013년 개정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 용어로 표현하는 데서 도드라진다. 여기서부터 지우는 그만의 스펙트럼을 가진 주체적 인물이 된다. 자연스레 배우 김향기의 ‘지우’는 전형적인 모사 연기를 벗어난다. 김향기는 극도로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암기력을 가진, 악어의 눈물과 파렴치한 진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세상에서 “나는 증인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용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제목에서 드러내는 것처럼 <증인>은 법정 영화인데, 여기서도 전형의 길을 벗어난다. 법정 영화의 장르적 쾌감은 진실에 닿은 주인공이 재판에서 승리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범죄자를 잡아넣거나 변호사가 피고의 무죄를 밝힐 때 쾌감이 생긴다.

그런데 <증인>은 정반대다. 변호사 순호는 검사 측 증인 지우와 절대 ‘같은 편’이 될 수 없다. 지우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순호는 재판에서 진다. 법정 영화로서 <증인>은 ‘승리의 쾌감’ 대신 ‘지는 용기’를 향해 나아가는데, 패배의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순호를 배우 정우성은 담백하고 단단하게 연기한다. 특히 그가 말없이 상대를 바라볼 때면 장면 전체에 차분한 호흡이 생긴다. 최근 정우성의 출연작 중 그 눈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세상을 보여주는 해피엔딩의 동화 같지만, <증인>은 꽤 가혹한 영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순호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그 질문은 관객에게도 서슴없다. ‘선한 의지’만으론 절대 닿을 수 없는, 용기와 실천의 무게가 뻐근하다.

editor 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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