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연애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파인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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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엘리오가 열일곱 살이던 그해 여름에 찾아온 손님, 풀어헤친 셔츠에 해진 에스파듀, 수영 팬츠 차림처럼 자유분방해 보였지만 실은 소년 엘리오만큼이나 내성적이었던 스물네 살의 청년 올리버. 이탈리아의 시골 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이 6주의 여름 동안 나눈 사랑의 밀어들은 내게 끈적하고 텁텁한 여름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산책과 수영, 오후의 낮잠, 잘 익은 여름 과일 먹기, 캐모마일 향 비누로 샤워하기, 책과 영화에 나온 음악 듣기. 그리고 일기 쓰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인공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소년 엘리오가 적어 내린 일기장을 옮긴 듯 엘리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자기감정을 토로하는 은밀한 문장들과 상대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붙들어 복기하고 상상하는 행위에 관한 묘사는 한 줄 한 줄 읽어 내릴 때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경험을 안겨준다.

엘리오처럼 첫사랑의 시간을 통과했으나 과연 사랑을 이토록 치열하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끓어오르는 감정을 의심하고 검열하면서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체험의 반복, 그의 손과 발이 몸에 처음 닿았던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를 기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작가 안드레 애치먼은 언어라는 수단을 마법처럼 부리면서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연애 소설의 마스터피스 반열에 올려놓는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고고학자인 엘리오의 아버지를 따라나선 엘리오와 올리버는 조각상이 발견된 바닷가에서 화해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영화로 옮기면서 각본을 맡은 제임스 아이보리는 엘리오의 아버지의 직업을 고고학자로 바꿔 오프닝 타이틀부터 영상 미학을 구현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선 그의 직업이 ‘언어학자’라는 설정이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생과 사랑 그리고 예술을 더 깊이 사유하도록 이끈다. 우아하되 잘난 척하지 않고, 에로틱하되 저급하지 않은 안드레 애치먼의 ‘언어의 기술’은 영화를 통해 이미 유명해진 ‘복숭아 장면’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작가는 사춘기 소년의 얄궂은 자위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중에서 신이 사랑에 빠진 남녀를 시기해 복숭아 나무로 만든 신화를 연결해 관능적이면서도 지적인 구절을 완성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복숭아의 성적 상징성을 유려한 문장으로 새기면서 탐욕의 과일을 끝내 사랑의 증표로 만드는 에치먼의 필력에 감탄하며, 복숭아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망설임 없이 접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매년 여름을 보내는 의식으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특별 주간을 보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를 다시 보며 여름의 기운을 한껏 받고, 틈틈이 소설을 읽는다. 올해는 책장에 나란히 꽂아 놓고 여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책 두 권을 꺼냈다. 매년 읽을 때마다 감흥이 추가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접어 놓은 페이지가 점점 늘어나 전자책을 새롭게 구매했고, 지난해 겨울에 발간된 속편 소설 <파인드 미>는 처음 꺼내 읽었다.

<파인드 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재회를 마지막으로 미루고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발적인 구성을 취한다. 게다가 네 개의 장으로 이뤄진 소설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중년 이혼남에게 불현듯 찾아온 사랑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기술한다.

소설 <파인드 미>는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룬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한여름의 소설이라면 <파인드 미>는 늦여름부터 가을의 소설이다. 뜨거운 시절을 보내고 회한의 세월을 보내던 시기에 찾아온 뜨거운 사랑. 피아니스트가 된 엘리오와 짧은 연애를 하는 중년의 미셸 역시 새뮤얼과 마찬가지로 뒤늦게 만난 젊음에게 열정을 느끼고 당혹스러워하지만 다시 찾아온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어지는 올리버의 후회담. 가정을 꾸려 안정을 누리고 일에서도 성취를 이루면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산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애치먼은 인생의 가을 문턱에 접어든 세 남자의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행복의 의미를 역설한다. 나를 완전하게 만드는 짝을 발견하고 그와 함께하는 여정이 누구나 살고픈 인생 아니겠냐고 말이다. 비로소 어른이 된 엘리오는 이들 곁에서 조용히 용기를 불어넣는다. 인생의 폭풍을 견뎌낸 엘리오의 말과 행동은 겉은 단단하고 속은 무르익은 무화과를 떠올리게 한다.

<파인드 미> | 안드레 에치먼

전편이 복숭아였다면, <파인드 미>에서는 무화과가 연인들의 증표이자 사랑의 과일로 등장한다. 무화과가 가장 맛있는 시기가 8월부터 11월까지라고 하니 무화과를 실컷 먹으며 나이와 시간을 거스르는 연인들의 달뜬 고백을 읽어도 좋겠다. 소설 속 가을 공기와 맞닿아 가슴도 선선해 질 거다. 오늘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러브 송, 바흐의 ‘아리오소’를 들으면서 자야겠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잇는 강력한 사랑의 주문 ‘파인드 미’를 읊조리면서.

editor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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