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결코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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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情所困無心戀愛世.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떠나버린 그 사람을 우린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장국영’이란 세 글자가 세상에 떠오르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떠나간 순간까지, <스크린>은 그의 발자취를 기록했습니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2020) 5월 1일(금) 개봉을 맞아 <패왕별희>(1993) 그리고 장국영을 다시 만납니다. 편집자 주


TITLE
패왕별희
개봉일 | 러닝 타임
1993년 12월 24일 | 156분
STAFF
감독 첸 카이게 | 제작 슈팽 | 원작 리리안 리, 루 웨이 | 편집 페이 샤오난| 촬영 구 창웨이 | 미술 첸 화케이 | 음악 자오 지핑 | 연주 중국 중앙 오케스트라, 북경 음악원 오케스트라
CAST
쳉 데이 장국영 | 두안 샬루 장팽이 | 주샨 공리 | 쿠안 지파 루퀴 | 나쿤 잉다

첸 카이게의 5번째 작품 

제 46회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피아노>와 함께 공동수상한 <패왕별희>는 중국영화 중흥을 선도하는 ‘제5세대’의 선두 주자인 첸 카이게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패왕별희>는 어릴 때 경극단에 함께 들어가 훗날 동성애 관계로 발전한 두 남자와 한 기생의 삼각관계를 통해 중국현대사를 조명한 영화. 첸 카이게는 이 영화에서 불가항력적인 주위 상황에 의해 낱낱이 해체되어버린 개인과 그 개인들을 얽어매고 있던 관계들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중국 경극 연희장면을 담은 화려하고 탐미적인 영상과 함께 예술에만 깊이 빠져들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그러나, 인간은 결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제를 설득력있게 끌고간 작품이다.

중국 오페라와 경극에 대하여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중국 오페라는 예술적 형식이 고도로 세련·정형화되었다. 대사·의상·화장술·몸짓 심지어 눈의 움직임마저 기교적이고 양식화된 표현술로 발전한 것이다. 배우가 단지 몇가지 단순하면서도 형식적인 몸동작을 했을 뿐인데 관객은 정확하게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식화되었는데, 무대에 선 배우의 이러한 정형화된 움직임은 중국 오페라를 우아한 춤동작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중국 오페라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대단히 문학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들과 국가들, 부족들 사이의 전쟁을 테마로 하는 작품들이 그 두 형태다. 문학적인 오페라는 주로 아름다운 노래와 시(詩)적인 대사가 중심을 이루고, 전쟁이나 군인을 다룬 오페라는 화려한 곡예술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동적으로 꾸미는 특징이 있다. 오페라의 내용은 역사물에서 비극·전설·코미디·익살극 등등 다양하다.

경극은 1790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다른 중국의 오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경극은 중국에 존재하는 수백개의 다른 형태의 지방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노래와 낭송, 춤, 곡예 그리고 의상들의 거대한 향연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버라이어티 쇼이다.

다른 중국 오페라 형식과 비교했을 때, 경극의 특징은 캐릭터들이 몇 가지 주요한 역할 중 단 한가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곧 어린시절부터 오로지 한 타입의 역할만을 집중적으로 훈련받기 때문에, 그 역할만을 전 생애에 걸쳐서 연기하게 된다. 자기 역할에 맞는 독특한 몸짓과 연기를 개발하여 각각의 타입마다 노래하고 말하고 심지어 걷는 것마저 다르게 된다. 경극 초기엔 보통 10가지 형태의 역할이 정형화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이것은 단지 4가지 형식으로 단순화되었다. 

<패왕별희>는 대표적인 중국 경극의 하나로 기원전 2백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중국 고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몰락한 초패왕은 희망을 잃게 되고, 사랑하는 애첩 우희를 떠나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우희는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춤을 추며 자결함으로써 사랑을 입증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패왕별희 (1993) © 스크린

두 경극 배우의 파란만장한 생애

영화 <패왕별희>는 바로 이 경극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현실과 무대의 삶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영화는 1925년 군벌시대 중국을 배경으로 시작되며, 유명한 북경 경극학교에 맡겨진 두 소년 두지와 시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길고도 고생스런 교육과정을 마친 후, 섬세한 미소년 두지에게는 당연히 여자 배우 역할이 주어지고 시투는 군인 역을 맡게 된다. <패왕별희>는 바로 그들 두 사람이 줄곧 연습해온 경극이다. 

어릴 때 경극단에 들어가 동성애관계로 발전하는 두 남자와 한 기생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전개되는 <패왕별희>. 이 영화에도 중국현대사를 향한 첸 카이게의 시선이 들어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본토를 침략하던 때, 데이(두지, 장국영)와 두안 샬루(시투, 장팽이)는 가장 유명한 경극 배우가 되어 있었고, 샬루는 홍등가의 유명한 창녀 주샨(공리)과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약혼자 사이인 그들을 시기와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쳉. 악의의 복수심에서 그는 한 부유한 후원자 유안에게 의탁하게 된다. 

쳉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결혼하는 두안과 주샨. 그 두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낀 쳉은 아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1945년 일본군이 물러가고, 쳉은 일본군을 위해 노래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된다. 그러나 한 유력한 국민당군 고급장교가 쳉의 연기를 보기 위해 북경을 방문함으로써 그는 풀려난다. 그의 범죄가 공연을 수락해 저질러진 것이고 또 그로부터의 면죄 역시 공연을 받아들여 이루어졌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해방시키고 경극 역시 혁명 이데올로기를 채택함으로써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열렬한 공산주의 찬양자인 양자 샤오 시의 냉철한 비난과 힐난을 받고 쳉은 경극 배우 생활을 청산한다.

세월은 흘러 문화혁명의 불길이 치솟는 1966년, 샤오 시가 이끄는 홍위병들에게 심문당하는 두안. 공개 자아비판 때문에 이성을 잃은 두안은 쳉의 동성애 ‘범죄’를  폭로하고 이에 맞서 쳉은 주샨의 과거를 들이댐으로써 독기에 찬 공격을 가한다. 자기 통제력을 잃은 두안은 한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증언함으로서 주산을 자살로 이끈다. 텅 빈 경극장을 함께 걸어가는 쳉과 두안의 1977년. 그들은 ‘패왕별희’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패왕별희 (1993) © 스크린

감독에 대한 짧은 이해

첸 카이게는 1952년 유명한 영화제작자인 첸 화이커의 아들로 북경에서 태어났다. 또 신문 편집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화혁명(1966~1976)이 전 중국을 뒤흔들었고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각급 학교는 문을 닫게 된다. 문화혁명 초기 몇 년을 겪는 동안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첸 카이게 감독은 얘기한다. 실제로 당시의 그의 경험은 훗날 그의 창조력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도시청년 운동에 휩쓸린 그는 1969년 중국 남서부 지방 농촌의 생활을 경험한다. 그 후 군에 입대한 그는 1971년 베트콩 지원작업에 투입되기도 했으며, 75년 북경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영화 연구소의 조수로서 영화제작의 길에 뛰어든다. 78년 북경영화학교에 입학한 첸 카이게는 문화혁명 이후 세대 중 가장 재능있고 야심만만한 선두주자로 디렉터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같은 과정에는 훗날 중국영화를 이끌게 되는 티안 초안초안, 장예모, 우 추니우 등도 있었다. 1982년 졸업 무렵의 첸 카이게와 동료들은 대단히 의기투합된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협동작업을 통하여 훗날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영화의 저력을 부활시킨 ‘제5세대’ 주자로 알려진다. (첸 카이거의 첫 작품 <황토지>는 동문 장예모가 촬영을 담당한 공동작업의 대표적 예이다)

첸의 데뷰작 <황토지>(84)는 85년 4월 홍콩 국제 영화제에서 발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전세계 예술 영화 전문극장에서 개봉되고 중국 뉴 시네마에 대한 세계 비평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중국의 ‘빈곤과 현실의 뒷모습’을 여과없이 외부세계에 드러냈다고 공산당에 의해 기소되는 등 풍파를 일으킨다. 첸은 곧이어 두 번째 작품 <대열병>(85)을 통해 1984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35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위해 훈련받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의 주제는 개인 및 집단 가치 사이의 괴리와 마찰이었다. 세 번째 작품 <아이들의 왕>(87)은 고무농장 벌목 노동자 시절의 작업동료였던 작가 종 아쳉의 단편을 영화화한 것으로 88년 깐느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왕> 이후 1987년 그는 뉴욕 주립대학 초청 장학생으로 도미하여 그곳에서 국제영화계와 폭넓게 접촉함으로써 견문을 넓힌다. 90년 귀국하여 영국 및 독일의 지원 아래 <현위의 인생>(91년 발표)을 제작한다. 또 같은 해 자서전 「나의 홍위병 시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화 <패왕별희>는 그의 다섯 번째 작품인 셈이다. 

TITLE ROLES

패왕별희 (1993)

쳉 데이 역의 장국영

1956년 홍콩 출생.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뒤 귀국하여 제2회 아시안 송 컨테스트에서 2위 입상. 직후 ASIA TV에 출연하기 시작,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한편 81년 독집앨범 ‘바람은 불어오고’를 발표하여 홍콩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자가수의 한 명으로 부각된다. 담가명 감독의 <열화청춘>(82), 오우삼의 <영웅본색 1·2>,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 1·2>(87, 90), 관금붕 감독의 <인지구>(88),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90) 등에 출연한다.

90년 음반제작자로 변신하여 캐나다로 이주한 그를 <패왕별희> 제작진들이 설득하여 쳉 역을 맡게 되었다. 이 역을 소화하기 위하여 장국영은 장기간에 걸쳐 경극의 몸동작과 율동을 연습하였고, 광동어만을 구사하는 사람에게는 외국어 만큼이나 힘든 북경어를 마스터하게 되었다. 동 영화 제작기간 동안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에 출연하기도 했다. 

패왕별희 (1993)

주샨 역의 공리

1963년 심양 근처에서 출생. 85년~89년 중앙 아카데미 연기학과를 다녔다. 학창시절 장예모 감독의 88년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수상작 〈붉은 수수밭>을 통해 화려하게 은막에 데뷰했다. 또 장예모 감독의 두 번째 작품 <OPERATION COUGAR>(89), 이한상 감독의 <마지막 왕비>(88), 정소동 감독의 <진용>(90) 장예모의 <국두>(92), 왕정 감독의 <도협 2>(91), 장예모의 <홍등>(91), 실비아 창 감독의 <북경에서 온 메리>(91) 등에 출연함으로써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여배우로 각광받게 되었다. 1992년 장예모 감독의 <귀주이야기>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그녀는 그 해 4월,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미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 완성한 작품은 상해에서 활동중인 여류감독인 이력지의 작품 <화혼>이다. 유명한 화가 반옥량의 자전적인 작품.

패왕별희 (1993)

두안 샬루 역의 장 팽이

1956년 북경 출생, 첸 카이게, 장예모 등 제5세대 감독들이 같은 학교 연출학과를 졸업하던 82년 북경 영화 아카데미 연기학과를 마쳤다. 학생시절 작가 라오 셰의 고전소설을 영화화한 링 지팽 감독의 <RICKSHAW BOY>(81)에 주연으로 발탁되었는데 동 영화는 중국의 주요 영화상을 휩쓸었으며 그에게도 연기자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출연한 두번째 영화 <북경의 기억들>(82)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83년도 마닐라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외 출연작으로 <평화로운 몽상가의 모험>(86) <경찰관>(90)<후회없는 청춘>(91)이 있으며 가장 최근작은 수도승의 유혹이다. 

46회 CANNES “WINNERS”

<스크린> 1993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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