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1993)

역사와 혁명에 얽힌 참담한 에세이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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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情所困無心戀愛世.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떠나버린 그 사람을 우린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장국영’이란 세 글자가 세상에 떠오르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떠나간 순간까지, <스크린>은 그의 발자취를 기록했습니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2020) 5월 1일(금) 개봉을 맞아 <패왕별희>(1993) 그리고 장국영을 다시 만납니다. 편집자 주


스크린 영화 評 <패왕별희>

아다시피 <패왕별희>는 올해 <피아노>와 함께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이다. 첸 카이게가 연출한 이 영화는 작년 <현위의 인생>에서 보여준 관념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고 <황토지><아이들의 왕> 보다는 좀더 깊은 분노와 열정이 넘쳐 흐른다. 첸 카이게는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하여 예술과 정치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동성애의 특수한 형태에 대한 독특한 추적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의 대세는 중국의 역사와 혁명에 얽힌 참담한 기록이자 일반적인 평가를 넘어선 참담한 에세이다. 글·이효인 (영화평론가) 

데이(장국영)와 샬루(장팽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 <패왕별희>의 인기 배우다. 데이는 고통스런 경극학원 시절을 샬루의 큰 도움으로 무사히 마쳤고 또 그와 공연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동성애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반해 샬루는 그것을 대수롭잖게 여기고 고급 술집의 작부인 쥬산(공리)과 결혼한다. 이후 그들의 애증은 애처롭게 진행된다. 그 배경은 1920년대 여러 군벌이 중국을 통치하던 시절부터 일제의 만주침략기, 국민당의 본토 집권기와 중국 공산당의 집권기를 거쳐서 이후의 문화혁명기 그리고 현재까지에 이른다.

가장 중국적인 것으로 시작

영화는 이제 아주 늙어버린 데이와 샬루가 공연장에서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연장의 관 리인은 어눌한 목소리로 두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둘이 자신을 밝히자 관리인은 곧 존경을 표하며 물러선다. 이 장면, 캄캄한 가운데 안개같은 것이 자욱 피어올라 있고 또 저쪽 한 곳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들어온다. 이 장면 하나 만으로 중국의 색깔은 드러난다. 그리고 곧 이어 경극 음악이 울려퍼진다. 그러면서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한 긴 회상으로 접어든다. 회상이란 단어는 지나치게 도식적인 표현이고, 건지고 싶지않은 기억의 강물에 두레박을 던져서 무엇인가를 퍼올린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닫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데이와 샬루의 삶과 예술은 격동기 역사의 노리개이자 희생물에 불과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들은 공연장으로 끌려나갔고 예측할 수 없는 대접을 받았다. 그것이 환대든 박대든 그들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직 운명적으로 경극을 선택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여러차례  수모를 당하고 둘은 어렵사리 옛날의 권좌로 복귀한다. 그러나 둘이 살아남는 과정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문화혁명기에는 서로를 비열하게 폭로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샬루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데이와 주샨을 폭로하는데 이 와중에서 주샨은 자살한다. 그것 뿐이 아니다. 자신들이 길에서 주워키운 아이가 이제 홍위병이 되어 자신들을 비판하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살아남았 다. 둘은 존경받는 원로 인민배우로서 경극장에서 연습을 한다. 샬루는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지만 데이는 그 상처와 동성애로 비롯된 자신의 절절한 애정이 무너져내린 것을 간직하고 있다. 결국 데이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초패왕을 위해 자결한 애첩 우희처럼 연습도중 자결한다. 

역사 속 개인 존재의 연민 

데이의 동성애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경극과 얽히면서 생겨난 것이다. 매춘부 어머니의 버림, 경극학원에서의 고통은 당시 중국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혼탁한 시대가 오자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었다. 더욱이 문화혁명기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고통을 안겨줬고, 살아남은 자의 치욕은 핏발선 분노로 남았다. 그래서 데이는 죽었고 첸 카이게는 이 영화를 만들었다. 첸 카이게가 묘사한 데이는 영화 속의 데이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환상 혹은 믿음과 현실적 가능성을 혼동한 모택동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문이기도 하다. 물론 첸 카이게는 데이의 삶과 죽음을 애도하지만 모택동에 대해서는 그러질 않는다. 즉 모택동 개인에 대한 비판 혹은 애도보다는 더 깊은 곳, 그러니까 역사의 거센 물결과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이라는 불가해한 존재에 대한 연민을 그렸던 것이다.

감독 역시 문화혁명기에 하방하였고 영화인이었던 아버지를 비판하였다. 이는 그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에 잘 그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모택동을 위시한 권력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황금의 세계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라고, 첸 카이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 공산당 때문에 중국의 경제적 발전이 늦었다든가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투정이다. 그는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또 인간성조차 파괴되어 버린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이러한 슬픔과 분노가 경극 <패왕별희>를 통하여 도도히 흘러내린다. 중국은 이 영화를 상영금지하다가 국제여론에 밀려 이제 풀었다. 

패왕별희 (1993) © 스크린

열고 닫기의 정교한 형식미

이 영화에서도 역시 첸 카이게의 형식미는 구구절절이 넘쳐 흐른다. 그의 형식미는 ‘열고 닫기의 정교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의 동작을 다 보여주지 않고도 관객들이 한 씬이 끝날 때마다 그것을 추리하여 정리하게끔 한다.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것이다. 극중 인물의 심리와 전개를 쫓아 화면의 사이즈가 결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여기에다 화면 속 주 인물의 다음 시선을 따라가서 보여주기보다는 과감하게 잘라내고 그 다음 화면 속 주 인물의 시선과 일치하는 프레임 구도와 사이즈를 사용한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대체로 극단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닫힌 화면의 계속적인 사용이 관객들의 상상력을 억제할 정도에 이르면 그는 과감하게 화면을 열어젖힌다. 이는 주로 시퀀스의 첫 장면 혹은 큰 사건의 경과 후 나타나는데 때로는 자잘한 화면적 설명을 생략하고 관객들을 하나의 정서로 몰아넣는 과감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중국영화 감독들의 공통된 화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첸 카이게 영화의 형식미는 내용의 정서와 감정의 상승효과를 고도로 계산한 위에서 쓰인 것이다. 그는 함부로 화면의 아름다움만을 위해서, <현위의 인생>에서는 가끔씩 그러기도 했지만, 장중한 그림을 차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가능하면 내용에 형식이 복종되도록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 그것을 뛰어넘는 형식미 추종의 화면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그것은 간혹 실패하기도 했지만, 이영화에서는 대체로 성공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그러하며 데이가 아편을 피우며 방황하는 장면 그리고 경극 학원에서의 여러 장면들은 지금까지 말한 많은 것들을 느끼게끔 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생명력은 음악과 어울리면서 절정에 이른다. 처음에는 낯선 경극의 음악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화면은 아편연기같은 환각 상태로 우리를 밀어넣는다. 날카로운 가성은 심연 저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하고, 운율있는 중국어는 낭만적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 자체의 매력만으로는 존재이유를 잃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역사의 매 순간을 불쑥 내밀어 주의를 환기하고 다시 삶과 역사의 상념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들이다. 그것은 몇 번씩이나 감정의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다가 결국 칭송해마지 않는 과거 역사에 침을 뱉는다. 하지만 하늘에 침뱉기다. 그렇다고 첸 카이게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의 비판은 진정한 사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참다운 역사적 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의 허무지정이 인간의 사랑과 이상주의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생긴 것이라면 미련한 신념보다는 쓸모있기 때문이다. 또 이 속에서 동성애에 대한 비인간적인 편견과 예술에 대한 경박한 견해를 비판하는 것도 읽는다면 역사, 예술, 사랑에 대한 이전의 견해를 전격적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행간에 배인 인간의 눈물

왜 나는 <패왕별희>를 보면서 김산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리랑」의 김산을 무고하게 죽인 것은 중국 4인방의 한 명이었던 강생라고 알려져 있다. 항일투쟁이기도 하였던 중국혁명은 이처럼 무고한 조선 공산주의자를 살해한 셈이다. <패왕별희>의 인물들이 공산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점만 빼면 그들 역시 김산과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다. 물론 「아리랑」과 <패왕별희>가 겨냥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사람들은 이것들이 역사의 행간에 끼어있는 인간의 눈물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놓칠리 없다. 성공한 혁명과 좌절당한 혁명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눈물을 씻어줄 혁명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벗들에게 <패왕별희>를 권하고 싶고, 좌절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스크린> 1994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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