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1993)

중국의 자존심을 자부하는 거장

패왕별희 첸 카이게 감독 내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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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情所困無心戀愛世.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떠나버린 그 사람을 우린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장국영’이란 세 글자가 세상에 떠오르는 순간부터 세상에서 떠나간 순간까지, <스크린>은 그의 발자취를 기록했습니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2020) 5월 1일(금) 개봉을 맞아 <패왕별희>(1993) 그리고 장국영을 다시 만납니다. 편집자 주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은 일년에 단 한 편이라도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단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소박한 기쁨과 경이를 안겨주었던 영화 <패왕별희>의 첸 카이게(陳凱歌) 감독이 뒤늦게 내한일정을 가졌다.

나도 나의 종교가 있는데 바로 예술, 영화예술이다. 모든 종교에는 숭배자가 있는 것과 같이 난 예술에의 숭배자이다.

그의 첫 번째 영화 <황토지>에서 다섯 번째 작품 <패왕별희>까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끊임 없이 주목을 받았던 진 감독은 이번 내한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기자회견과 인터뷰에 응하면서 보냈으며 「스크린」 역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16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어진 인터뷰로 인해 매우 피곤해 보이는 진 감독은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기자의 말에 웃으면서 ‘몰관계(沒關係)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오히려 휴식시간을 줘서 고맙단다. 얼핏 패왕을 연상케하는 훤칠한 풍채와 멋지게 빗어넘긴 백발 의 신사 진감독은 역시 뚜렷한 주관과 당당함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의 자존심임에 틀림없음을 인터뷰중에 느낄 수 있었다.  

2년의 고된 작업〈패왕별희〉 

<패왕별희>를 찍게 된 배경과 과정을 얘기해 줄 수 있는가? 

말하자면 굉장히 길다. 얘기는 예전에 대만에서 쿵후액션배우였던 서팽에서 부터 시작된다. 

 1988년 깐느영화제에서는 나 뿐아니라 장 이모우, 후 샤오시엔 등 많은 감독들이 참석했었고 서팽은 「패왕별희」라는 소설책 한권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함께 과연 그 소설을 영화화할 수 있을지 토론을 했고 나 또한 그 소설 속의 기본적인 인물관계에 적지 않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기에는 무언가 좀 걸리는 것이 있었고 그후 2년 동안 줄곧 「패왕별희」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어떻게 영화를 찍어야 하는지 떠올랐고 서팽과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서팽은 우희 즉, 정접의 역은 존 론과 장국영 중에서 선택을 하자고 했다. 사실 존 론 역시 분장했을 때 아주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강한 남성의 분위기였고 장국영은 그렇지 않았다. 부드럽고 평안한 분위기를 가진 장국영의 눈빛은 우리가 그를 택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국선 역의 공리는 서팽과 내가 동시에 제안을 했고 장풍의(패왕 역)는 내가 추천을 했다. 왜냐하면 그는 나와 함께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후 「패왕별희」의 원작자 이 벽화와 대륙의 소설가를 찾아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해나갔는데그 작업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소 설의 내용은 너무 담백하고 스토리가 미약했기에 많은 부분에 보충이 필요했다. 사전작업 6개월, 촬영기간 5개월 그리고 편집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무척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되었나 보다. (웃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우선 북경에서 옛 모습을 갖춘 장소를 찾는 것이 어려웠고, 의상을 고증, 제작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었다. 

<패왕별희>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우선은 관객들에게 애정 이야기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영화를 통해 중국의 역사, 문화, 특유의 생활방식을 다른 나라, 특히 서방국가에 알리고 싶었다. 정치적인 배경과는 무관한 (아마도 영화와 정치와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은 듯 하다). 난 영화 속 인물에 많은 관심이 있을 뿐이다.

 또 영화를 통해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배우게 하는 것도 영화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옛 문화나 다른 나라의 여러가지 특색 등… 난 어린시절을 북경에서 지냈다. 그때의 북경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난 북경의 옛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북경에 대한 내 추억과 꿈을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패왕별희>를 통해 중국의 역사나 옛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느 정도인가? 

난 한 영화를 통해 중국 역사를 다 보여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장래를 위해서이다. 내 영화를 통해 역사를 완전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패왕별희>를 통해서는 중국의 근대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패왕별희>가 기존의 작품들보다 좀 더 상업적이고 그 분위기가 변했다는 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 영화들과 품격이 좀 다르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어떤 영화이든 마찬가지이다. 소재나 주제에 따라 영화 기법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사실상 <패왕별희>에서는 기술수단의 창조도 보여진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인물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동성애에 긍정적

외람된 얘기지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접의의 입장과 그 역을 소화해낸 장국영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과 생활방식을 스스로 택할 권리가 있다. 동성애를 신의 섭리에 어긋난 비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자연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특히 정접의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여자의 연기를 해왔고 자신의 현실과 무대생활을 구별할 능력이 없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행복이자 아픔이다. 예술가만이 두 가지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 <패왕별희> 영화의 후반부를 관금붕 감독이 감독하고 장국영의 연기를 지도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누가 그런 소릴 하는가? (기가 막힌 듯. 놀라는 표정인듯, 하지만 생긋 웃으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장국영은 중국 경극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았고, 특히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장국영의 연기력은 뛰어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공리는 어떤가?

그녀는 매우 운이 좋다. 시작부터 장 이모같은 좋은 감독을 만났고, 또 좋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자신도 재능이 뛰어나다. 이전엔 아시아에 그만한 여배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패왕별희>를 촬여을 마친 후 불만족했던 부분은 없는가?

어떤 친구가 이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다.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었다. 1949년 이전의 영화를 보면 직접적인 표현을 보여주었었는데 그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결함이 있긴 하지만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장국영의 모습이 잡히는 장면에는 자주 무엇인가 시야를 가리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의도인가?

그렇다. 특히 연기와 필터를 고의적으로 많이 이용했다.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장국영이 아편에 중독되었을 때 들려지는 어항속의 물방울 소리도 어떤 의도가 있는가?

있다. 아편을 피우고 나서의 공허함을 표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들려준 소리이다.

<패왕별희>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는가?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

모두 다 애착이 간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정접의가 일본군 앞에서 노래하고 국선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단소루를 데리고 간 후 일본군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완벽했고 강한 인상을 준다.

<패왕별희>로 많은 상을 받은 걸로 아는데 수상에 대한 느낌이 어떤가? 그리고 상을 받고 나면 어깨가 더 무거워지지 않는가?

난 세번이나 깐느에 영화를 출품했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자신의 영화가 상을 얻고 많은 주목을 받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영화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에 미국 오스카상에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과 최우수 촬영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기왕이면 수상을 했으면 한다. 그것은 곧 중국영화가 세계에서 더 튼튼한 위치를 굳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은 좋은 영화를 증명해주는 것 이상은 없다. 영화는 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영화가 상을 받고 나면 다음 작품을 더 잘 찍기 위해 고민하고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이 얘기는 나와는 상관없다. 난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영화를 생각한다.

첸 카이게 감독 © 스크린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과 생활 방식을 스스로 택할 권리가 있다. 동성애를 신의 섭리에 어긋난 비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자연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양손에 담긴 물·영화

평상시 영화를 찍을 때 중점을 두는 곳은 어디인가?

영화는 양손에 담긴 물과 같다. 조금이라도 틈새가 보이면 금세 흘러나가 버리는 물처럼 어느 한 구석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완벽하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 중 색채, 광선을 중요시 여기고 또 인물의 연기도 중요하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고 굉장히 복잡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 또는 영향을 준 감독은 없는가?

좋아하는 감독도 많고 어렸을 때부터 봐온 영화들도 많아서 딱 꼬집어 얘기할 순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개인적이다. 내 스타일, 내 분위기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모방이란 없다.

그렇다면 이전에 감독이었던 아버지는 어떤가?

내 아버지 역시 감독이셨다. 물론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없다. 그는 50~60년대 제한이 많았던 시절에 영화를 찍었다. 아버지는 지금 74세의 나이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으신다.

지금 아버지와 같이 사는가?

아니다. 사실 난 반은 미국에서 반은 중국에서 산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북경에서 살고 있고, 난 미국에서 혼자 산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어느 정도 보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가?

영화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단순한 감상의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부하고 연구하며 분석하는 태도로 냉정하게 영화를 본다. 특히 방법 , 표현기교를 살펴보며, 영화관은 거의 가지 않는다. 많은 국제영화제에 참가해서 보는 영화도 적지 않으며, 볼 영화는 주로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한다. 또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다. 좋은 영화면 뭐든 좋다. 희극에도 비극에서 공포영화에도 좋은 영화는 있기 마련이다.

어제 미국이 아닌 북경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북경에서 무엇을 하던 중이었나?

다음 작품 시나리오 작업중이었다. 20년대 옛 상해를 배경으로 보여지는 중국의 모습 을 담은 영화로 서양문물과 기본의 문물 사이에 일어나는 혼란과 싸움을 보여줄 것이며 정해진 배우는 아직 장국영 뿐이다. 

장국영은 표현력이 뛰어나고 그의 얼굴에는 구시대에 가까운 분위기가 있으며 매우 고전적이기 때문에 적합하다. 이번 작품은 올 안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홍콩의 오우삼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혹시 그와 비슷한 제안이 없었는가? 

있었다. 미국의 큰 영화사 제작자가 함께 영화찍을 것을 제안했고 깊게 토론했었다. 하지만 결정내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중국영화에 대한 전망은?

상해가 아시아 영화의 헐리우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상 1930년대의 상해는 영화의 최고 중심지였고, 또 중국은 대륙 뿐 아니라 홍콩, 대만까지 세력이 막강하다. 하지만 이것은 천천히 실현되어야 할 문제이다.

혹시 감독이 아니면 배우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엔 배우로서도 전혀 지장이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그런 생각한 적 없다. 좋은 감독이 너무나 부족하다. 난 영원히 좋은 감독이 될 것이다. 사실〈패왕별희〉에서 패왕의 역할을 맡으라는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감독 역할 하기에도 부족하다. 

상해배경의 신작

본인은 제5세대 감독으로 알고 있는데 많은 후배 감독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별히 아끼는 후배가 있는가?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유형의 영화를 많이 만들 것이 …. 유감스럽게도 난 한 편도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열렬한 팬은 없는가?

(웃으면서) 있긴 있다. 하지만 난 습관이 잘 되지 않아서 어색하다. 가끔씩 팬레터나 선물을 받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이 있는가? 왜냐하면 영화마다 색채의 비중이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녹색을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꼭 영화에 표현하라는 법은 없다. 황색이나 홍색은 눈에 부담감과 피로주기도 하지만, 녹색은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눈과 마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혹시 종교가 있는가? 

없다. 하지만 난 종교를 존중한다. 종교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도 나의 종교가 있는데 바로 예술, 영화예술이다. 모든 종교에는 숭배자가 있는 것과 같이 난 예술에의 숭배자이다.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얘기해줄 수 있는가?

개방적이다. 어떤 상황에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잘 적응한다. 고정관념도 없고 어떤 일에든 흥미를 가지고 있다.

혹시 술을 마시는가? 

마시지 않는다. 첫번째 이유는 몸에 안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혹시 노래 실력은 어떤가? 

노래는 아주 못한다. 마음이 아무리 기뻐도 노래는 잘 안나온다. (웃음)

한국에 두 번째 방문인데 느낌이 어떤가? 

사실 줄곧 행사가 있어서 제대로 본 곳이 없다. 아쉽다. 한국음식은 미국에서도 즐겨 먹 는다. 특히 불고기나 김치.

김치는 맵지 않은가? 

문제없다. 10대 시절을 지냈던 중국 운남에서 매운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이렇게 마칠까 한다.인터뷰에 응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스크린」 독자에게 한마디를 부탁한다. 

감사드리고, 「스크린」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스크린> 1994년 3월 호 | 취재 서은희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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