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가 도착했습니다 <만신>

시네마틱드라마 SF8 만신 Manxi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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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노덕 | 각본 김민경 | 출연 이연희, 이동휘

‘빅 데이터’의 시대, 고도의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적중률  98%의 운세 앱 ‘만신’이 개발됐습니다. 만가지 신을 합친 것처럼 영험한 만신 앱은 금세 사람들의 삶을 장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자정 만신 앱이 보낸 메시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물론 ‘만신 앱’ 반대론자들도 있습니다. 만신 앱에 중독된 동생이 결국 이 앱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믿는 토선호(이연희)는 만신 뒤에 있는 인간 개발자를 찾아 나섭니다. 

한편 만신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 믿으며 종교처럼 추종하는 정가람(이동휘)은 어느 날, 만신으로부터 ‘북극성’의 예언을 받습니다. 그날 금빛별 재킷을 입은 토선호를 만난 정가람은 의심 없이 선호를 따라나섭니다.   

재미 삼아 ‘오늘의 운세’를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재미 삼아 봤어도 ‘동쪽에서 귀인이 찾아온다’처럼 구체적인 듯 모호한 한 마디가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 계속 신경이 쓰이죠. 만약 적중률 98%의 운세 앱이 나온다면? 중독되지 않기란 어려울 겁니다.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 위에서 서야 하는 우리들은 옳은 길을 찾고 싶으니까요. 

노덕 감독의 <만신>은 운명론이 대세가 된 세상에서 ‘운명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결과’라고 믿는 토선호와 ‘자유 의지에 따른 그 선택조차 정해진 운명’이라고 믿는 정가람이 각자의 믿음을 시험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운세 앱이라는 친숙한 소재로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세계에 ‘운명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SF죠. 

<만신>은 <SF8> 연작 중에서 유일하게 원작 소설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입니다. 그만큼 노덕 감독의 색깔이 훨씬 자유롭게 드러나죠. 노적 감독이 전작 <특종: 량첸살인기>(2015)에서 보여준 유머러스한 캐릭터 소동극과 스타일리시한 추격극, 반전 뒤에 남겨진 메시지를 <만신>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신>2020

‘만신 앱’에 점령된 세상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만신>은 CG 사용을 최소화합니다. SF라고 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희고 반듯하고 차가운 비주얼은 찾아볼 수 없어요.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 같은 레트로 디자인에 공을 들였습니다. 뚱뚱한 모니터와 초록색 도트의 화면, 선이 주렁주렁 연결된 거대한 컴퓨터로 연출되는 ‘미래’는 ‘레트로 SF’라는 수식이 어울리죠. 복고적 미장센이 ‘운명’을 좇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더 잘 어울립니다.  

<만신>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이미지는 SF의 분위기를 돋우는 CG가 아니라 배우 이연희의 신선한 캐릭터입니다. 부스스하게 탈색한 머리,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반을 가린 검은 선글라스를 쓴 이연희는 말간 얼굴로 환하게 웃던 기존의 얼굴을 싹 지워버립니다. 덩치 큰 오토바이를 몰고 ‘운명’을 향해 돌진하는 토선호는 배우 이연희의 캐릭터 영역을 한 뼘 넓혀주는 인물입니다. 유들유들 가벼워 보이지만 적재적소에서 진중해지는 정가람은 배우 이동휘가 편안하게 연기합니다. 

노덕 감독은 관객에게 ‘운명’에 대한 토선호의 불신과 정가람의 맹신을 모두 경험하고, ‘믿음’의 바닥엔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게 만듭니다. 쉽게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진 않습니다. 선호와 가람이 그토록 만나려고 애썼던, 인간의 운명을 98%까지 예측해 낸 인공지능 ‘만신’의 마지막 선택이 남기는 질문이 흥미로웠습니다. 

editor 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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