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속의 파트너 <블링크>

시네마틱드라마 SF8 블링크 Blin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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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한가람 | 극본 강산 | 출연 이시영, 하준 

가까운 미래, 기술이 발달한 만큼 범죄가 고도로 지능화되면서 형사들도 수사가 쉽지 않습니다. 박봉에 일도 고된 형사를 지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죠. 승진을 앞둔 강력반 형사 지우(이시영)은 어느 날, 반장(이준혁)에게 불려갑니다. 신입이 왔다는 말에 잠시 들떴지만, 이 신입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 형사의 뇌에 인공지능 ‘신입 형사’를 이식하는 프로젝트에 당첨된 거죠. 내 눈에만 보이는 ‘귀신 같은’ 인공지능 신입 형사 서낭(하준)과 울며 겨자 먹기로 팀이 된 지우는 살인 사건 수사에 투입됩니다. 그런데 이 귀신 같은 녀석, 예상외로 꽤 쓸모 있단 말이죠.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이제 꽤 익숙합니다. 하루에 몇번이나 ‘인공지능’과 대화하는지 따져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어요. 인공지능은 단순히 말하자면 놀라운 암기력과 두뇌 회전, 습득능력을 타고난 아이와 같습니다. 그 ‘아이’를 가르치는 건 우리 몫이죠. 결국 이 똑똑한 아이와 함께 살게 될 거라면, 잘 가르쳐서 데리고 살아야겠죠. 한가람 감독의 <블링크>는 고참 형사 지우가 신입 AI 형사 서낭을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하는 ‘발랄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줍니다. 

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주체적 시선이 돋보이는 데뷔작 <아워 바디>(2019)로 주목받은 한가람 감독에게 SF 범죄 수사극 <블링크>는 의외의 선택 같지만, 결과적으론 몸에 착 붙는 맞춤복 같습니다. 한가람 감독은 <아워 바디>에서 ‘보여주고, 보이는’ 몸의 의미를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면, <블링크>에선 육체가 물리적 힘을 발휘하는 ‘액션’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원작 소설에선 남성 형사였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면서 한가람 감독 버전 여성 타격 액션의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내죠.  

<아워 바디>엔 ‘몸의 변화’를 연기한 최희서 배우가 있다면, <블링크>에는 ‘이미 완벽히 준비된 몸’의 이시영 배우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감독은 자부심 가득한 앵글로 이시영 배우의 근육을 보여주며, 현실적인 타격 액션의 기대치를 끌어올립니다. 이시영 배우가 액션을 훌륭히 소화한 영화는 여러 편 있었지만, ‘여성의 몸’을 관음적으로 비추는 시선을 철저히 배제한 한가람 감독의 카메라 안에서 이시영 배우는 훨씬 더 편안하게 펄펄 날아오르죠. 

<블링크>2020

고참 형사 지우와 신참 형사 서낭이 티격태격하다가 점차 ‘파트너’가 되어가는 ‘형사 영화’의 장르적 재미도 탄탄합니다. 어린 시절 자율주행 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뒤 인간의 감과 촉을 믿는 지우가 인공지능 서낭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배우 이시영과 하준의 티키타카 호흡이 좋아요. ‘뇌에 이식하는 AI 칩’이라는 SF 설정이 신선한 코미디와 액션으로 자연스레 이어져 경쾌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서낭 역을 귀여운 호감형으로 만든 데는 하준 배우의 공이 크죠. 

<블링크>의 인공지능 형사의 이름 ‘서낭’은 이 영화가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에 바라는 희망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서낭은 토속 신으로,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뜻합니다. 마을 어귀 산등성이를 오가던 사람들이 오래된 큰 나무에 대고 마을의 평안을 빌며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것이 시간이 흘러 ‘서낭당’이 됐죠. 인공지능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도 이와 비슷할 것 같네요. 인공지능이 서낭 같은 수호신이 될지, 재앙을 불러오는 악신이 될지는 모두 인간이 ‘쌓는 정보’에 달린 셈이니까요. 

지우와 서낭의 첫 합동 수사를 담은 <블링크>는 굉장히 잘 만든 ‘드라마 시리즈’의 첫 회 같습니다. 두 형사의 티격태격 수사극이 시리즈로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백중> 지은이 김창규 | 출판사 아작

원작 소설 <백중> 지은이 김창규 | 출판사 아작

<백중>은 2005년 SF 소설 <별상>으로 데뷔한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의 대표적 SF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창규 작가의 작품입니다. 장편소설 <태왕사신기>로도 유명한 작가죠. <백중>은 인공지능이 생활 곳곳에서 활용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자율주행 차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형사 형사가 인공지능 신입 형사와 함께 ‘강화 인간’들이 벌인 범죄를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제목 ‘백중’은 음력 7월 보름, 제사와 차례를 지내 혼을 잊는다고 하여 ‘망혼일’이라고도 부르는 날입니다. “19세기 사람들에게 마치 귀신 같을” 인공지능과 인간이 뒤섞여 살아갈 미래의 낯선 풍경을 설득력 있게 펼쳐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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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백중> 바로 읽기

editor 박혜은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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