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시대의 사랑 <우주인 조안>

시네마틱드라마 SF8 우주인 조안 Joan’s Galax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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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이윤정 | 극본 문주희 | 출연 김보라, 최성은 

뿌연 미세먼지로 뒤덮인 2046년. 다행히 미세먼지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항체가 개발됐지만 너무 비쌉니다. 부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항체 주사를 맞고 평균 100세의 수명을 삽니다. 하지만 항체 주사를 맞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30세. 돈으로 수명을 사는 극단적 계급사회가 된 거죠. 

스물여섯 살 대학생 이오(최성은)도 태어나자마자 주사를 맞은 ‘항체 금수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병원 측의 착오로 이오 대신 다른 아이가 항체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이오의 수명은 이제 약 4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제야 이오는 지금껏 못 봤던 세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학교에서 유일한 ‘항체 흙수저’이자 청정복도 입지 않고 다니는 조안(김보라)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우주인 조안>은 오프닝부터 관객의 숨을 ‘턱 막으며’ 문을 엽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 먼지로 가득한 2046년. 의학 기술은 발달했지만, 그 열매는 부자들만의 것입니다. 이 세계는 태어날 때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Clean)와 맞지 못한 N(Non-Clean) 그리고 N으로 태어났지만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청정복’을 빌려 입고 수명을 늘린 중간 계층으로 나뉩니다. 단지 ‘청정복’을 입고 자동차를 탔다는 이유로 경찰이 불심 검문을 합니다. “너무 비싼 청정복 렌탈비를 내기 위해 차를 훔치는 N들이 많다”는 거죠. 

미세먼지, 항체 주사, 청정복 등 <우주인 조안>의 SF 요소 한 겹 아래엔 2020년을 살아가는 20대의 고민이 가득합니다. “죽어라 공부해서 의사가 됐지만 (의사 월급으로도) 청정복 임대료와 보증금 대출상환액을 다 못 넣어”라는 대사에서 청정복을 대신할 수 있는 현실적 단어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죠. 하지만 <우주인 조안>은 절망과 비관으로 러닝타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우주인 조안>2020

하루아침에 C에서 N으로 신분이 전락한 이오가 100세 수명, 건강, 보장된 미래를 잃은 대신 ‘지금, 여기’ 현재를 얻게 된 것처럼요. 불과 30년밖에 살지 못하는 ’N’ 조안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습니다. 몸에 안 좋아서 26년 동안 커피 한 잔 못 마셔 본, 비 한번 맞아본 적 없는 이오에게 자유로운 조안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떨림과 설렘을 알려줍니다.

<우주인 조안>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여성의 성장담이자,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청춘이 서로 벽을 허물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경험하는 청춘 로맨스입니다. 원작 소설의 이오는 남자였지만, 이윤정 감독은 이오를 여성으로 각색해 훨씬 섬세한 교감을 묘사합니다. 배우 김보라와 최성은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스치는 손끝으로 퀴어 로맨스의 텐션을 화면 가득 담아내죠. 이오와 조안은 서로에게 자양분이 되어 내일을 향해 성장해갑니다. 멋진 로맨스는 언제나 훌륭한 성장담이라는 걸 <우주인 조안>이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우주인, 조안> 지은이 김효인 | 출판사

원작 소설 <우주인, 조안> 지은이 김효인 | 출판사 안전가옥 

영화 <우주인 조안>이 몽글거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성장 로맨스라면, 원작 소설은 C와 N으로 나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20대의 고민이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이 2020년 20대의 고민과 맞닿아 있어서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숨기지 않습니다. 30년 짧은 인생을 하루하루 불태우듯 자유롭게 사는 N도 죽음 앞에선 무너져 내립니다. 

단단한 세계관, 충실한 설정값으로 SF 단편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입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내 죽음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듭니다. 견고할 것 같았던 C와 N의 계급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결말입니다. 

editor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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