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를 만드시고 <인간증명>

시네마틱드라마 SF8 인간증명 Empty Bod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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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김의석 | 각본 김의석 | 출연 문소리, 장유상

과거라면 ‘죽었을’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미래가 찾아옵니다. 뇌의 일부만 살아있다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 몸과 연결해 되살려낼 수 있습니다. 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문소리)는 이 기술로 죽은 아들(장유상)을 살려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좀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분명히 내 아들인데,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아들의 형체를 한 인공지능이 ‘인간 아들의 뇌’와 연결을 끊어버린 겁니다. 엄마는 ‘아들의 뇌’ 살해자로 인공지능 기계 아들을 법정에 세웁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과학 기술을 통해 죽음에 도전해왔습니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죽음은 심장과 호흡의 ‘돌이킬 수 없는 정지’와 뇌의 ‘완전한 기능 상실’로 인해 생명 유지 시스템이 멈춘 상태를 의미하죠. 그렇다면 ‘생명 유지 시스템’을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그 결과 이제 ‘장기 이식’은 상식이 됐죠. 인간의 장기나 신체를 대체 기계로 보완하는 바이오닉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식’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실제로 뇌의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로보캅>(1987), <공각기동대>(1995) 등의 20세기 SF 명작들이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를 내세워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할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면, 21세기 SF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이젠 ‘인간상’을 넘어 ‘기계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한 거죠. 

김의석 감독의 <인간증명>의 질문도 굉장히 도발적입니다. 인공지능 아들 입장에선 이 소동극이 부조리할 뿐입니다. 인간의 뇌 조각과 연결되었을 땐 당연히 ‘인간’ 대접을 받았는데, 그 연결이 끊겼다는 이유로 갑자기 쇳덩어리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인공지능 아들은 자신도 ‘아들’임을 증명하고자 어머니와 논쟁을 벌입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태어나게’ 했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요?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인간증명>2020

<인간증명>이 던지는 쉽지 않은 질문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건, 배우 문소리의 애끓는 얼굴입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법정 신 등을 제외하면,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문소리는 분노와 상실, 공허의 감정을 말없이 보여줍니다. 분명 눈앞에 있는 ‘아들이자, 아들이 아닌’ 존재를 지켜보는 엄마의 속이 무너졌다가 끓어올랐다가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보이는 기분입니다. 표정을 숨기고 있던 인공지능 아들이 자신의 ‘존재’를 강변할 때 펄펄 끓어오르는 장유상 배우의 광기 어린 얼굴도 인상적입니다. 

대사 없이 이미지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드러내는 김의석 감독의 스타일은 이번에도 유효합니다. 특히 타인과 사회적 집단에 속하기 위한 개인의 ‘인정 투쟁’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데뷔작 <죄 많은 소녀>(2018)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 배우와 <인간증명>의 장유상 배우의 캐릭터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다만 SF의 특성상 반드시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정보를 모두 비주얼에 담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터뜨리기엔 50분의 러닝타임이 조금 부족해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의석 감독은 생경한 SF 장르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특히 “이 영화는 SF 영화입니다!”라고 고요하게 부르짖는 오프닝 장면에 주목해주세요. 

<독립의 오단계> 지은이 이루카 | 출판사 허블

원작 소설 <독립의 오단계> 지은이 이루카 | 출판사 허블 

<인간증명>의 원작은 이루카 작가의 단편 소설 <독립의 오단계>입니다. 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수상작으로,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권리’를 묻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일상화된 미래에서, ‘모델명 A796’으로 불리던 인공지능 주인공이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그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어머니 가혜라와 벌이는 파격적인 법정 드라마죠. 

정교하게 쌓아올린 미래 세계관과 법정 드라마의 논리적인 긴박감이 돋보입니다. ‘모성’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광기를 비판적으로 그린 점, 인공지능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세계를 설명한다는 점이 영화와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제목인 ‘독립의 오단계’가 완성되는 결말이 뭉클합니다. 

  <인간증명> 에피소드 바로 보기
📗  원작 <독립의 오단계> 바로 읽기

editor 박혜은

재미에도 안목이 있다. <더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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