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너 있다 <증강 콩깍지>

시네마틱드라마 SF8 증강 콩깍지 Love Virtuall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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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오기환 | 극본 오기환 | 출연 유이, 최시원

가상 공간에서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꿔 이상형을 만날 수 있는 데이트 앱 ‘증강 콩깍지’가 출시됩니다. 어느덧 한국에는 가상 연애 커플의 수가 현실 연애 커플의 수를 훌쩍 넘어서죠. 증콩 안에서 레오나르도와 지젤로 만난 서민준(최시원)과 한지원(유이)도 서로에게 푹 빠져 있는 ‘증콩’ 커플입니다. 100일을 기념해 한껏 분위기를 잡고 첫 키스를 하려는 그때, 증콩 시스템이 다운됩니다. 복구는 계속 늦어지고, 민준과 지원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둘 중 누구도 ‘이제 현실에서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아니, 못 하죠. 

사람을 볼 땐 외모가 아닌 내면을 봐야 한다지만, 외모는 딱 눈에 보이지만 마음은 볼 수가 없잖아요. 언제나 그게 연애의 딜레마죠. <증각 콩깍지>는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굉장히 보편적인 메시지를 한번 비틀어서 보여줍니다. 현실의 서민준과 한지원은 멋진 외모를 가졌지만, 증콩 안에서는 현실과 달리 조금 못생긴 얼굴로 만나서 사랑에 빠집니다. 

두 사람 모두 인공지능 성형 수술을 받았지만, 프로그램 오류로 전국에 똑같은 얼굴이 만 명이 넘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죠. 여기저기에 예쁘고 잘생긴 내 얼굴과 똑같은 사람이 넘치는 상황. 문제는 또 있습니다. 민중과 지원은 현실에서 호감을 표시하는 이성을 믿지 않습니다. 다들 얼굴만 보고 접근한다는 의심이 드는 거죠. 대신 증콩 안에서 두 사람은 ‘과거의 개성 있는 내 얼굴’로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현실의 나보다 가상 현실의 내가 더 ‘나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 이게 <증강 콩깍지>의 핵심입니다. 

<증강 콩깍지>2020

멀리 미래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도 사람들은 ‘현실의 나’와 ‘가상 세계의 나’라는 다른 정체성을 관리하며 삽니다. SNS 안의 유쾌하고, 멋지고, 즐겁고, 행복한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21세기의 정신적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증강 콩깍지>의 서민준과 한지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연인을 만나기 위해선, 현실의 나와 가상의 나 사이 어딘가에 있을 ‘진짜 나’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증강 콩깍지>는 연애가 남을 사랑하는 과정이자, 나를 사랑하는 노력임을 잊지 않습니다.  

다만 <SF8> 시리즈 중에서 유일한 SF 로맨틱 코미디답게 <증강 콩깍지>는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길로 갑니다. 소설 원작의 냉소적인 이슈를 솎아내고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맞는 뼈대만 가져왔습니다. 원작과 설정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죠. <선물>(2001), <작업의 정석>(2005)과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멜로 <이별 계약>(2013)을 만든 오기환 감독이 ‘로맨스’의 전공을 살려 SF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증콩 앱 다운에 화가 난 회원들이 ‘AR(증강현실) 집회’를 벌이는 장면처럼 SF 설정을 코믹하게 차용한 아이디어도 눈에 띕니다. 코미디와 로맨스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배우 최시원과 유이가 각각 가상 연애와 현실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서민준과 한지원의 공감대를 높여줍니다. 

<증강 콩깍지> 지은이 황모과 | 출판사

원작 소설 <증강 콩깍지> 지은이 황모과 | 출판사 안전가옥 

한국 SF 소설계의 기대주 황모과 작가가 참여한 ‘안전가옥 앤솔로지’ 단편 소설집 <대스타>에 수록된 소설입니다. 소설 <증강 콩깍지>는 증강 현실 렌즈 ‘콩깍지’를 착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상대를 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미래가 배경입니다. 렌즈 필터를 유명 연예인으로 설정하면, 내 연인이 유명 연애인이 되는 셈입니다. 주인공 윤성은 이 콩깍지 기술을 “시각적 비아그라”라고 표현하죠. 하지만 렌즈에 오류가 생기면서 윤성의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증강 콩깍지>는 영화보다 주인공의 속내를 훨씬 적나라하고 냉소적으로 들려주면서 판타지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에게도 ‘필터링’ 되어 있는 몇 겹의 콩깍지들이 무겁게 느껴지죠. 

editor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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